“인간의 한계까지 내몰린 전공의, 살인적 업무량 소화 위해 전시 상황 유지한다”
서울 모 대학병원에서 선배 전공의가 후배 전공의를 때려 비장이 파열된 사건이 발생했다.
4년차 전공의는 1년차 전공의에게 환자 진료에 관한 질책을 하면서 1년차 전공의의 배를 걷어찼다. 비장막이 찢어진 전공의는 결국 수술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환자 생명을 살리는 병원 내에서 폭력 사건이 발생한 것에 대해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지만, 이 문제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는 것이 전공의 사회의 의견이다. 분명 가해 전공의 개인의 책임도 있지만,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전공의들이 살인적인 업무량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강압적인 분위기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의 한 전공의는 “수술방에서 아랫년차 전공의들이 졸면 발로 한 번 가볍게 차서 깨우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도저히 정신을 못 차린다거나, 졸음 때문에 의료 사고에 근접한 실수를 하게 되면 점점 더 심하게 때리게 된다”고 설명하면서 “폭행한 전공의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막상 자신이나 자기 가족이 피로로 찌든 전공의들에게 수술을 받는다면 때려서라도 깨우고 싶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2014년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송명제, 이하 대전협)의 ‘전공의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조사’에 의하면 수련과정 중 언어폭력을 당한 경우가 65.8%, 신체적 폭행을 당한 경우가 22%로 집계되었다. 그런데 이들 폭행 사건 중 교수나 선임 전공의에 의한 폭행은 주당 100시간 이상 근무하는 업무강도가 높은 과에서 주로 발생한다. 주당 100시간 근무가 없는 전공과에서는 의국내 폭력 사건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정형외과는 전공과 중에서도 유독 업무량이 높다. 대전협과 의료정책연구소가 진행한 조사에 의하면 2015년 정형외과 1년차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134시간이었다. 전년차 평균은 112시간이었다. 근무 시간 동안 전공의들이 잠깐이라도 딴 짓을 하면 수술 업무 등에 차질을 빚게 되므로 고년차 전공의들은 저년차의 업무 시간을 분 단위로 관리한다. 전공의들 중 한 사람이라도 제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병원 업무가 마비되므로 의국 내의 분위기는 거의 전시 상황과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대전협 송명제 회장은 “전공의들은 수련병원에서 전문의가 되기 위한 수련 과정을 밟는 의사들이다. 어째서 이들 전공의들이 과도한 근무량에 시달리게 되었을까? 결국 의사 사회내의 가장 약자에 위치한 전공의들에게 업무량이 편중되는 구조적 폭력이 그 원인이다. 수련병원들이 전공의를 수련시켜야 하는 본연의 임무보다는 병원 운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전공의에게 인간의 한계까지 업무를 부담시키고 있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대전협은 이번 폭력사태를 보며 ‘그렇기 때문에 독립적인 전공의 수련환경평가기구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전공의들이 구조적 폭력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수준 높은 수련을 받기 위해서는 수련 환경에 대한 객관적 평가와 이에 따른 수련병원신임권한이 병원협회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
대전협 송명제 회장은 “언론에 노출된 가해자 개인만 처벌하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며, 물리적 폭력을 유발하는 구조적 폭력을 해결해야 한다”면서 “현재 독립적인 전공의 수련환경평가기구 개설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전공의의 수련 및 근로기준에 대한 법안’의 입법이 추진 중이다. 환자의 안전과 전공의의 인권, 그리고 올바른 의료 환경 수립을 위해서는 전공의들의 근무수련환경에 대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 2014, 2015 전공의 수련 및 근무환경 조사표 >

(자료 : 대한전공의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