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성명서]

  • 등록 2015.03.30 10:4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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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수련 특별법안에 대한 SNUH 성명서


서울대학교병원 전공의 협의회는 (이하 본 협의회) 본 성명서를 통해 ‘(가칭) 전공의의 수련 및 근로기준에 관한 특별법안’ (이하 ‘2015년 전공의 수련 특별법안’)의 전반적인 취지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다.

그러나 본 협의회는 ‘2015 전공의 수련 특별법안’에 뒤따르게 될 인력 공백에 대해 정부와 병원협의회의 구체적인 대비가 선행되지 않을 경우 2014년 ‘전공의 주당 80시간 초과 근무제한’ (이하 ‘2014년 80시간 수련규칙‘) 시행 후 뒤따랐던 수련 구조의 붕괴 및 환자 안전 저하의 역효과가 다시 증폭될 것으로 예상되어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I. 전공의 근무조건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그리고 앞으로도 요원한 이유.

전공의는 사회 초년생 의사로서, 정해진 수련병원에서 피교육자이자 피고용자로서 본인이 수련한 진료과목의 전문의가 되기 위해 교육받고 근무한다. 이 ‘배우는 의사’들은 대형 수련 병원의 필수 인력으로 대학병원에서 전문의의 지도하에 입원환자, 응급환자의 주치의로 근무하며, 야간 당직 근무 또한 전공의들의 몫이다. 고생하는 의사의 ‘48시간 이상 연속’으로, ‘일주일에 100시간이 넘게 근무’하는 이미지는 이 전공의들의 이야기다. 왜 전공의들은 그리고 병원들은 전공의의 열악한 근무 조건을 개선하지 못하는가?

첫째로, 전공의는 가장 약하다. 가장 어리고, 경험이 적은 전공의들은 전문의의 지도하에 진료를 하면서 배워야한다. 이들에게 미치는 병원 교수, 전문의들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수련을 정상적으로 마치는 것, 이후에 취직을 하는 것 모두를 움켜쥐고 있는 선배들에게 전공의들은 스스로의 권리를 요구하기 어렵다. 

둘째로, 전공의는 가장 저렴하다. ‘시키는 대로 초과근무’를 하는 근무시간의 유연성과 ‘시키는 일은 모두 할 수 밖에 없는’ 업무강도의 유연성을 고려하면 전공의는 전문의보다 10배는 싸다. 적정진료를 하면 할수록 적자가 나는 대한민국의 의료수가 구조에서 대형병원이 흑자 운영을 하려면 전공의 인력을 최대한 쥐어짜내는 수밖에 없다. 

현재의 전공의 수련은 ‘열정 페이’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기형적인 수련행태 및 근무여건은 대형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 일차적인 위험이 된다. 환자는 가장 실력과 시설이 좋은 병원을 찾아 대형병원에 몰려들지만 정작 환자의 진료를 1차적으로 담당하게 되는 전공의는 상식 이상의 과로와 수면 부족으로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이다.

II. 졸속 시행된 ‘2014년 80시간 수련규칙’의 부작용들이 던지는 교훈.

실제로 위와 같은 전공의의 근무조건이 알려지고 문제의식이 커지면서 2014년에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보건복지부에서 전공의 1주 최대 근무시간을 80시간으로 줄일 것을 주된 골자로 하는 시행령을 단계적으로 수련병원들에게 강제한 것이다. 처음으로 전공의 수련환경 및 근무여건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제정된 취지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으나 그 결과는 참담하였다. 앞서 언급된 구조적인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 채로 근무시간에만 규제를 가함으로써 다음과 같은 부작용들이 발생하였다.

첫째로, 많은 수련병원에서 근무시간 장부를 실제와 다르게 80시간에 맞춰서 전공의들이 허위로 작성하여 제출도록 종용하였다. 즉, 근무행태는 바꾸지 않은 채로 이중 허위 근무시간 장부를 보고한 것이다. 허위로 근무시간표를 작성하고 제출하는 행정적인 업무 또한 전공의의 몫이었다. 전공의들은 자기가 일한 시간보다 줄인 허위 근무 시간표를 스스로 작성하고, 스스로 서명하였고, 허위 근무기록에 없는 야간당직에 해당하는 초과 당직비는 받을 수 없었다.

둘째로, 전공의의 근무강도가 늘어나고 환자의 안전은 더욱 위험해졌다. 80시간 수련규칙이 시행되면서 근무시간 (t)에 제한이 생기자 병원들은 전공의 1인당 환자 수를 (N) 무리하게 늘리기 시작했다. 주치의 한명이 보는 환자 숫자가 무리하게 증가하였고 밤에 병동을 지키는 당직의사 수는 무리하게 줄였다. 

셋째로, 전공의 수련의 구조가 와해되었다. ‘2014년 80시간 수련규칙’이 시행되기 전까지 많은 진료과의 수련과정은 입원환자의 주치의, 응급환자의 1차 진료 등의 진료업무를 수련 초기의 1~2년차에 집중하고 3~4년차에는 진료업무를 줄이는 대신에 전문의로 활동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배워야할 기술의 연마 및 연구에 할애하도록 구성되어있었다. ‘2014년 80시간 수련규칙’이 시행되기 전 모자라는 진료공백에 대한 인력 대체 계획이 전무하였기 때문에 진료공백은 오롯이 3~4년차 전공의들에게 전가되었다. 결과적으로 전공의의 수련과정은 4년 동안 입원환자 및 응급환자의 진료업무만 계속하는 방향으로 왜곡되었다. 전공의 내내 일만하고 배우는 게 없어 전문의 자격증을 따도 제대로 진료할 수가 없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전문의 자격증을 받고 또 다시 전임의(펠로우)부터 새로 배워야 하는 부실한 전공의 수련과정의 병폐가 더욱 악화된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수련과정의 와해가 심했던 내과 및 외과는 올해 전국적으로 지원이 미달되어 필요한 신입 전공의 수를 채우지 못하였다.

전공의들이 부당한 4년간의 ‘열정 페이’를 감내해 온 가장 큰 이유는 그래도 ‘배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배움의 기회마저 사라져가는 현재 전공의 수련과정은 점점 무의미한 노역기간으로 변질되고 있다.

III. 근무시간만이 아닌 수련환경 및 구조에 대한 포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서울대학교병원 전공의 협의회는 현재 입법추진 중인 ‘2015년 전공의 수련 특별법안’의 취지에 공감하며 지지한다. 다만, 법안이 ‘2014년 80시간 수련규칙’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하기의 사항에 대한 준비가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로, 수련시간 및 임금에 대한 규정은 명확하나 근무 시간 중 근무 강도에 대한 규정이 없어 환자의 안전이 저해되는 부작용이 생길 여지를 남겨놓았다. 각 진료과목 별로 수련 중인 전공의 1인의 진료 및 근무 강도에 대한 구체적인 최대 허용 기준이 필요하다.

둘째로, 제 12조인 ‘전공의 교육권 보장’은 가장 중요한 항목임에도 매우 추상적으로 적혀있어 수련기관이 자의로 해석하고 소홀이 할 여지를 남겨 놓았다. 근무 시간과 휴식 시간의 한계를 정하고 이를 어길 경우 가해질 수 있는 제재를 정한 것처럼 전공의 수련에 필수적인 교육항목도 각 학회 중심으로 구체적으로 지정하고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는 수련병원에 대해 제재를 가하는 구체적인 시행규칙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2015 전공의 수련 특별법안’이 시행 될 경우 대학병원 등의 수련기관에 닥칠 ‘진료 공백’에 대한 대책이 반드시 ‘선행’ 되어야 한다. 대형 병원의 전공의 인력에 대한 의존도는 절대적이다. 현재의 시스템에서 전공의가 어느 날부터 갑자기 40시간 근무를 하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대학병원의 입원병동과 응급실은 마비될 것이 자명하다. 비현실적인 법률을 강제하면 상기와 같은 불법, 편법적인 근무 및 수련과정의 와해만 부추길 뿐이다. 전공의의 업무 공백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대체하려면 현재 근무수준에서 전공의 1인당 2-3명의 전문의 인력이 필요하며 이에 따라서 4-10배의 인건비가 필요하다. 제 19조에 실린 보건복지부의 경비 보조 대책의 구체화가 이 법안의 성공적 도입 여부를 결정할 것이 명약관화하며 다른 모든 조항보다 앞선 조건임을 재차 강조한다.

상기의 준비가 선행될 때에만 ‘2015년 전공의 수련 특별법안’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고 대한민국 수련병원의 전공의 수련의 질 향상과 환자 진료의 안전을 모두 확보할 것으로 믿는다.

제 30대 서울대학교 병원 전공의 협의회
기자 news@md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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