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케어는 실효성 없는 포퓰리즘 정책이며, 많은 부작용을 양산하여 의료의 왜곡을 심화시킬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케어가 필요한 주민(노인, 장애인 등)이 살던 곳(자기 집, 그룹홈 등)에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누리고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보건의료‧요양‧돌봄‧독립생활 지원이 통합적으로 확보되는 지역주도형 사회서비스 정책을 시행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커뮤니티케어라는 이름의 이 정책이 발표되자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의료계 내부적으로는 정부가 커뮤니티케어를 추진하고자 하는 다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도 하였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이하 본 회)는 정부의 커뮤니티케어 시행 발표 이후부터 이 정책의 문제점을 여러 차례 지적하였으나 정부는 올해 1월 시범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커뮤니티케어 선도사업을 실시할 것이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본 회는 커뮤니티케어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커뮤니티케어에 의료계가 참여해서는 안 되는 이유에 대해서도 밝히고자 한다.
1. 커뮤니티케어는 제대로 된 재정추계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되는 포퓰리즘 정책이다.
현재 커뮤니티케어 선도사업을 추진하면서 정부는 64억원 가량의 국비 지원을 생각하고 있다. 선도사업 추진계획에서 보건복지부는 중앙 정부에서 50%, 지자체가 50%의 재정을 부담해서 선도사업을 진행한다고 발표하였다. 그런데 커뮤니티케어는 일단 선도 사업 계획만 있지 전체적인 사업의 재정추계가 없다. 이는 대강의 계획만 세워놓고 선도사업 이후에 지속적으로 수정해 나가면서 투입되는 재정을 수정해 나가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런데 전체적인 재정도 아니고 선도사업 시행에 필요한 재정도 일선 지자체 입장에서는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작년 12월 복지부는 커뮤니티케어 선도사업에 100여 곳의 지자체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으나, 실제로 선도사업을 신청한 지자체는 29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상당수의 지자체는 재정적으로 커뮤니티케어 선도사업도 감당하기 힘들다고 스스로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미 상당수의 지자체는 커뮤니티케어를 위한 재정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보여지고, 참여를 결정한 지자체의 경우도 막상 사업을 시작하면 불어나는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여 사업 철회를 하는 곳이 늘어날 것이다. 최근 대한의원협회에서 문제제기 했던 의료급여 진료비 체불의 문제를 보면 커뮤니티케어 재정도 이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의료급여 환자의 진료비 지불을 위해 운용하고 있는 의료급여기금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일정 비율씩 나누어 부담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중앙정부 50%, 서울시 50%)를 제외하고는 지자체에서 20%이상을 부담하는 경우가 없다. 커뮤니티케어보다 지자체 부담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의료급여기금 부족으로 인해서 의료급여 환자의 진료비가 체불되는 사태가 매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의료급여기금의 부족 현상은 중앙정부의 과소예산편성이 가장 큰 원인이지만, 한편으로는 지자체가 복지관련 예산을 부담할 재정 여력이 낮은 상황임을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50%의 재정을 부담해야 하는 커뮤니티케어를 지자체가 감당해내기는 어려울 것이고, 결국 재정 부족으로 인해서 사업은 파행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정부가 커뮤니티케어를 밀어부치려 한다면 결국 증세는 불가피하고, 이는 곧 국민 부담으로 돌아가게 된다. 제대로 재정추계도 되어 있지 않고, 우리나라와는 수가나 시스템, 그리고 국민의식에서 현저히 다른 일본의 정책을 관 주도 정책으로 왜곡하여 가져와서 적용하려 하는 커뮤니티케어는 포퓰리즘 정책이며,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정책이다.
포퓰리즘임이 분명한 정책에 의료계가 협조하게 되면 자칫 후폭풍을 맞을 수가 있다. 커뮤니티케어가 안정적인 재정 운영이 불가능하고 증세를 통한 국민 부담을 가중시키는 정책이라면, 의사들이 오히려 이러한 면을 드러내어 반대를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커뮤니티케어가 발표되니 간호사, 약사, 한의사, 물리치료사 뿐만 아니라 영양사나 공무원들까지도 서로의 잇속을 채우기 위해 덤벼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의사들 마저도 이러한 무책임한 움직임에 동참하게 되면 결국 이 정책이 실패로 돌아가거나 폐해가 발생했을 때 오히려 정책의 중심축으로서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의협을 비롯한 의료계는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커뮤니티케어 참여를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2. 커뮤니티케어는 많은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는 정책으로, 이로 인해 여러 부작용이 파생될 것이다.
커뮤니티케어는 정책의 구조상 많은 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 의사 및 간호사는 물론이고 복지 공무원들까지 상당수 증원이 필요하다. 실제로 정부는 사회복지공무원 1.9만명을 증원하게 되면 커뮤니티케어 선도사업 지자체에 우선적으로 배치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현재도 인구 규모에 비해서 많은 공무원 숫자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커뮤니티케어의 시행은 폭발적인 공무원 증원의 명분으로 이용될 수 있다. 커뮤니티케어에서 공무원의 증원 문제는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의사 인력의 측면에서도 또 다른 문제를 양산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대한민국 의사들의 업무 강도는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상황이다. 따라서 실제 왕성한 활동을 하는 의사들은 이 사업에 참여할 여력이 없다. 방문진료 수가가 어떻게 책정될지 알 수 없으나 높은 수가 책정을 기대할 수는 없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그 시간에 자신의 자리에서 환자 진료를 더 하는 것이 더 이득인 상황에서 커뮤니티케어에 적극 참여할 의사는 없어 보인다. 결국 커뮤니티케어에 참여할 의사가 부족하다는 여론이 형성되면, 전체적인 의사 인력 증원의 목소리가 높아지게 되고 이는 곧 의대 정원 확충의 명분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정부가 커뮤니티케어를 건보재정 절감의 도구로도 이용할 것이라고 예상되는 상황에서, 그 재정 절감의 방식은 현재 늘어난 요양병원 병상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고령자와 만성 질환자의 재택의료 비중을 늘려가면서 요양병원 입원을 정부가 의도적으로 줄여가고, 그러한 방식으로 요양병원들의 구조조정을 유도할 것으로 보인다. 요양병원의 구조조정이 일어나면 이 곳에서 일하던 의료진들의 상당수를 정부는 저비용의 커뮤니티케어 인력으로 흡수하려 할 것이다. 의사의 입장에서 보면 전체적인 일자리는 줄어들면서, 관의 통제를 받는 일자리만 늘어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의사들의 일자리 감소는 결국 전체적으로 의사들의 수입 감소로 이어지게 되므로, 의사들의 일자리 확보가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진행되는 커뮤니티케어는 의료계 내부적으로도 계층 및 세대갈등이나 직역 갈등 등의 많은 부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3. 방문진료는 법적 안전장치나 실효성도 없고 의료진의 안전도 담보할 수 없으며, 원격진료 시행의 명분으로 이용될 수 있는 문제점이 있다.
왕진이나 방문진료는 의료가 발전하기 전에 거동이 힘든 환자에게 의사가 왕진가방과 청진기만 들고 찾아가서 진찰행위를 하던 것을 말하는 것으로, 지금 이런 수준의 의료 행위에 만족하는 환자는 없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아무런 정밀 의료장비 없이 간단한 진단 기구만을 가지고 시행하는 방문진료는 정확한 진단을 하기 힘들어 오진의 가능성이 높아질 수 밖에 없는데, 오진으로 인해 환자 건강이 나빠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이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법적인 문제에 대한 안전장치가 전혀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법적인 안전장치가 없는 상황에서 방문진료를 하는 의료진은 최대한 방어적인 진료를 할 수밖에 없게 되므로 방문진료는 형식적인 방문 이상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현재 고도화된 현대의학의 혜택을 누리고 있던 환자들에게 방문진료는 만족도나 실효성이 떨어지는 진료 형태이다. 현재대로라면 방문진료를 하게 되면 각종 봉사단체에서 벽지 의료봉사를 가서 감기약과 파스 같은 간단한 의약품들만 노인들에게 나눠주고 오는 수준을 넘기 힘들고, 이 수준을 넘어가면 어차피 의료기관 방문을 권유해야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실제로 현재 방문진료와 유사한 형태의 진료행위가 군 의료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격오지 소초나 전방지역에 근무하는 병사들의 건강 관리를 위해 군의관들이 주기적으로 찾아가서 진료를 하는 순회진료가 그것인데, 이 순회진료 역시 감기약과 연고 정도만 주고 오는 이상의 진료는 힘든 상황이고, 실제 병사들도 아픈 곳이 있으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처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것을 더 선호하고 있어 순회진료의 실효성과 필요성에 대해서 더욱 회의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번 선도사업에는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커뮤니티케어도 포함이 되어 있는데, 최근 정신질환자들에 의해 발생하는 강력범죄가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상황에서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방문진료를 하는 것은 의료진들의 안전에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특히 치료를 거부하거나 병이 잘 조절되지 않아 약을 제대로 먹지 않는 환자들을 방문진료 해야 할 가능성이 높은데, 이런 환자들 일수록 행동 조절이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방문진료를 담당하는 의료진들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고령자나 환자라고 해서 항상 약자라는 시각을 가지고, 제대로 된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으면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의 커뮤니티케어는 이러한 안전장치가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므로 위험한 정책에 의료진들이 동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방문진료를 포함하는 커뮤니티케어는 정부의 원격진료 도입을 위한 도구로 이용될 수 있다. 방문진료 의사가 모든 과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기는 어렵기에 원격진료가 필요하다는 논리를 펼 수도 있고, 재가 요양 환자들의 안전을 위해 방문의사가 실시간으로 환자의 상태를 원격으로 모니터링 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한 정도의 환자 상태라면, 원격 진료를 할 것이 아니라 신속하게 의료기관으로 환자를 이송해야 하는 상황으로 봐야 한다. 이러한 식견은 의사라면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는 것으로 정밀진단장비도 없는 방문진료 현장에서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이외에도 원격 장비의 오류나 고령자들의 이용 불편 문제 등 원격진료와 관련한 여러 가지 문제들은 현재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커뮤니티케어에 도입하는 것은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원격진료와 관련한 정부의 억지주장이 예견되는 커뮤니티케어는 반드시 철회되어야 한다.
4. 현재의 역량으로는 지역의사회가 커뮤니티케어의 컨트롤타워가 될 수 없고, 오히려 이용만 당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지역의사회는 개원의 중심의 지도부로 구성되어 있어 다양한 직역을 대표할 수 없고, 대부분의 지도부 인원들이 의료정책이나 복지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상황이다. 정부가 말하는 커뮤니티케어는 병의원 뿐만 아니라 지자체 및 각종 복지인력들과의 긴밀한 연계를 요구하고 있는데, 과연 현재의 지역의사회가 이러한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는 냉정히 평가해 보아야 한다. 실제로 커뮤니티케어 관련하여 케어플랜 조직이 수시로 만나 회의를 하고 계획을 세우게 될 것인데, 그 자리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려면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다른 직종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지역의사회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고, 지자체 입장에서도 정부와 지자체의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에서 주도권을 못 미더운 의사들에게 넘겨줄 리가 만무하다.
결국 커뮤니티케어는 지자체 및 보건소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의사들은 여기서 들러리만 서거나 이용만 당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커뮤니티케어에 투입할 의사 인력을 선정하고 이들의 실제 참여가 이루어지게 만들 수 있는 권위를 의사회가 가지지 못하는 상황임을 정부나 지자체가 다 알고 있는 데, 정책의 주도권을 의사에게 달라고 요구만 하면 이를 정부나 지자체가 들어 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다. 현재 지역의사회가 지역 내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들에 영향력이 있는가와 이들을 움직여 정책에 참여시킬 수 있는지 만을 생각해보아도 커뮤니티케어에서 의사회가 가질 수 있는 위치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일본처럼 지역의사회의 역량과 권위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커뮤니티케어가 진행되면 의사가 주도권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현재 의협은 의사회 권위를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전문가평가제에만 목숨 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의사회가 진정으로 힘을 가지기 위해서는 동료에 대한 통제나 관리를 먼저 고려하기 전에, 회원들이 안정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는 의료 환경과 정책을 정부에 요구하고, 이를 지역사회에 정착시켜 나가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제 없이 진행되는 전문가평가제는 의사들에게 또 다른 불필요한 규제일 뿐이다.
최근 경기도의사회에서 회원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의사회원 절대 다수가 커뮤니티케어 방문진료를 반대하고 의사회가 나서서 적극 반대해주길 원하며, 의협의 방문진료 사업 참여결정이 잘못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의협이 커뮤니티케어 참여 의사를 철회하지 않는다면 회원들의 뜻에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므로 의협 집행부는 권위와 신뢰를 잃게 된다. 의사회원들에게 진정으로 신뢰받고, 권위를 인정받는 의사회가 되기 위해서라도 현재의 의협은 커뮤니티케어라는 실효성 없고 의료의 왜곡만 조장하는 포퓰리즘 정책을 반대해야 한다.
5. 결론
커뮤니티케어는 국민들로 하여금 마치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마음껏 최선의 진료를 받을 수 있고, 윤택한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만드는 정책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득실을 따져보고, 실현 가능성에 대한 연구 없이 이상적인 목적으로만 추진되는 정책들의 결과는 항상 부작용만 양산한 채로 실패로 귀결되어 왔다. 실제로 정부가 커뮤니티케어의 대상으로 벤치 마킹한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만만치 않은 비용을 감당하기 힘들어 지자체별로 적절히 조정된 형태로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재가요양 비용이 병원요양 비용보다 많이 들면 들었지 적게 들지 않는다는 평가가 일본 내에서도 나오는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과연 커뮤니티케어가 필요하고 실현 가능한지부터 냉정하게 평가를 해보아야 한다.
주거, 복지, 보건의료 등의 대대적인 개선을 통해서 내 집에서 개개인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며, 정부가 이러한 것을 가능하게 해주겠다는 말은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정부가 진정으로 국민 건강을 향상시키고 지역 사회에 의료 사각지대가 없게 만들려면, 환자들이 의료기관에 쉽게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의료기관이 부족한 지역에는 의료기관 개설을 유도할 수 있는 지원책 등의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커뮤니티케어를 냉정하게 재검토해야 하며, 의료계도 실효성 없는 포퓰리즘 정책인 커뮤니티케어 참여를 반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2019년 6월 3일
대한병원의사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