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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반값 한약’의 길이 열렸을까?

2020년 7월 29일

- 우리가 공공이다 #2. 주치의가 이야기하는 첩약 급여화의 진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보건복지부 제13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는 올해 10월부터 월경통, 안면신경마비, 뇌혈관질환 후유관리 등 3개 질환에 대한 첩약(한약)을 국민건강보험 재정에서 지원한다는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을 발표하였습니다. 2023년 9월까지 3년간 총 1500억 원이 투입될 이 시범사업에 대해 정부, 한의학계 및 언론은 ‘반값 한약’의 길이 열렸다고 적극 홍보하고 있습니다. 

의학적 타당성, 치료 효과성, 비용 효과성 등을 고려하여 결정되는 건강보험 급여화 여부는 가장 효과적이고 표준화된 치료를 국민 누구나, 지역을 막론하고 보장받을 수 있게 해준다는 큰 장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첩약(한약) 급여화 시범사업은 급여화 기준 어디도 만족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기준을 경시하고 정면으로 위배하는 기준 미달의 세금 낭비 정책입니다. 

‘모든 약은 독이다’라는 격언이 있습니다. 좋은 효과를 내는 약일수록 더 철저히 검증하고, 부작용 여부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첩약(한약)에 대한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해줄 자료는 어디에 있습니까? 동의보감, 방약합편, 향약집성방, 경악전서와 같은 한약서를 통해 오랜 세월에 걸쳐 증명되었다고 한다면, 좋습니다. 그러나 의업에 들어설 때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다고 의사들이 히포크라테스 시대의 4체액설이나 사혈의 효과를 맹신하지는 않듯이, 환자의 건강이 달린 문제는 검증에 검증을 거치고, 또 계속 도전되어야만 합니다. 현재처럼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자료가 부재한 상태로 첩약(한약)을 급여화하겠다는 것은 정부가 나서서 국민을 상대로 국민의 혈세를 들여 대규모 임상시험연구를 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첩약 급여화를 추진하는 주된 논리인 환자 비용 부담 절감에도 문제가 많습니다. 주치의를 하다 보면, 표적항암제나 면역치료제처럼 안전성과 유효성이 확보되었음에도 약제 가격이 비싸거나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비급여(환자가 100% 비용 부담) 투여를 받는 환자들을 자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치료를 포기하는 분도 있습니다. 중병에 걸린 것도 억울한데 몇백, 몇천만 원의 비용을 부담하다 보면 그런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진정 국민건강보험이 사회안전망으로서 제 기능을 하는 제도라면, 이런 환자들의 절규와 눈물 어린 호소를 먼저 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번 코로나19 범유행으로 중요성이 대두된 감염관리는 건강보험에서 터무니없게 낮게 책정되어 있어, 감염관리료만으로는 병원이 환자와 의료진을 제대로 보호할 수 없습니다. 병원 규모가 커서 장례식장과 주차장, 커피숍을 운영하여 그것으로 메꿀 수 있으면 다행인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병원들은 값싼 방호복과 마스크를 사들이는 형국입니다. 현실이 이렇다면, 매년 500억이라는 적지 않은 예산을 효과도 모호하고 입증도 되지 않은 첩약(한약)들을 보장성 강화라는 명목하에 급여화 해주기보다 바로 이런 곳에 쓰이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부는 지금이라도 의료적 중대성을 고려한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 

질병이 있을 때 한방 의료기관을 이용한다는 국민은 6.0%에 그쳤습니다. 이것은 이미 보건복지부 주관 <한방의료이용 및 한약 소비 실태조사>에서 밝혀진 내용입니다. 평생 한방 치료를 받을 마음도 없고, 계획도 없는 사람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런데 왜 막대한 세금이 허투루 쓰이는 것은 용납하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보건복지부에 요구합니다.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추진을 지금 당장 중단하십시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요구합니다. 
우리 국민의 품위에 맞게, 가장 높은 수준의 과학적 근거만을 가지고 첩약(한약)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판단하여 주십시오. 애꿎은 국민이 임상시험대상이 되지 않게 보호해주십시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요구합니다. 
우리나라 의료가 가야할 길과 재정의 건전성 유지를 위해, 지금까지 고수해온 요양급여기준을 지키고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한의학계에 요구합니다.
지금이라도 베일에 감춰진 것과 같은 첩약(한약)의 조재 내역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규격/표준화하여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임상시험의 과정을 거쳐주십시오. 거기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약만 처방해주십시오. 그것이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길입니다.

‘다만, 환자에게 해를 끼치지 마라(Do no harm)’는 의료윤리의 대원칙을 심각하게 받드는 우리 모두가 되길 희망하며, 글을 마칩니다. 



2020년 7월 29일
대한전공의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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