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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준비되지 않은 정책의 예견된 결말

2020년 7월 31일

- 우리가 공공이다 #4. 현장의 목소리 무시한 정책, 실패의 반복


10여 년 전에도 정부는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의사를 지역에 배치하려 했으나 실패했습니다.

“의대들은 각 지역의 병상이 과잉 상태이며 중환자들이 모두 서울지역 병원으로 몰리기 때문에 설립 조건을 지키길 요구하는 것은 막대한 적자를 감당하라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10년 전과 지금의 의료 현실이 다르다는 것이다.” 2009년 9월 동아일보의 기사 내용입니다. 1995년 의료 서비스 낙후지역에 500병상 이상의 병원 건립을 요구하며 정원 40명 규모의 의대 설립을 허가했습니다. 의대들은 일단 이 조건을 받아들였지만 막대한 비용 마련의 어려움 등으로 이행하지 못했고 결국은 의대 정원 감축이라는 페널티를 받았습니다.
 
10년 전 정부도, 지역 의대 졸업생의 미래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의사를 가르칠 의학교육 및 수련 내실화가 먼저입니다. 의사가 되기 전 2년 이상의 실습 교육은 다양한 과의 질환을 경험하여, 1차 진료의 역할을 익히기 위한 필수 과정입니다. 서남의대가 부속 병원 없는 부실 교육으로 폐교된 사건이 채 5년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수련에 대한 대책 없는 의대 신설 및 정원 증가는 부실 교육의 온상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그 피해는 또 한 번 학생들과 그 가족 그리고 그들에게 진료받을 국민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정부는 과거 정책에 대한 반성도 없이 또 같은 정책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17년 전에 의사 정원을 감축한 이유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정부는 전체 의대 입학 정원의 약 10%인 351명을 단계적으로 감축했습니다. 줄곧 늘려오던 정원을 감축하는 것을 두고 당시 복지부 관계자의 말을 2003년 7월 동아일보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입학정원을 감축하지 않을 경우 건강보험 재정부담만 커질 우려가 있다” 의사 정원을 다시 확대하기로 한 2020년 현재 건강보험 재정은 여유로워졌을까요? 아니면 제대로 된 진료가 이뤄지지 못할 정도로 진료비를 더 강하게 억제하는 방법을 터득이라도 한 것일까요?

문재인 정부는 보장성 강화를 내걸고 초음파, MRI의 단계적 급여화를 시행하였습니다. 검사가 의학적으로 불필요하더라도 환자가 원하면 시행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의료 현장에서 무분별하게 이뤄졌습니다. 이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의 막대한 누수는 4월 건강보험료의 인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의료계의 조언을 무시한 보장성 확대는 결국 과도한 재정부담으로 돌아와 그 범위를 다시 축소하며 간신히 수습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메르스 이후 의료계가 계속 터무니없이 낮다고 지적해왔던 ‘감염 관리료’를 정부가 방치한 사실이 코로나-19 사태로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의료를 정부는 제대로 보장하고 있는 걸까요?

17년 동안 그 어떤 정부도 국민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는 것 외에 건강보험재정과 건강 보장성을 확대할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의사가 국민과 환자를 위한 의술을 펼치는 대신 보험 기준에 맞는 진료를 하게 만들었습니다.
 
현장의 목소리를 무시한 정책은 여러 번 실패했습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의학전문대학원은 한 때 절반이 넘는 의대에 설치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의대학장협의회는 의학전문대학원으로의 전환에 반대했습니다. 군 복무 기간으로 인한 학생들의 고령화와 학문 지향성 감소, 의사 생애 단축, 이공계 학부의 입시 학원화를 양산한다는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의과학자 양성, 고교 우등생의 기초 학문 분야 진출 유도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정부는 이 정책을 밀어붙였습니다. 그리고 의학전문대학원 체제가 반쯤 자리를 잡아갈 2010년, 이 제도에 대한 반대는 이공계로 확대되었습니다. 2010년 3월 ‘바람직한 의∙치의학전문대학원 정책방향 설정’ 대토론회에서 한 이공계 교수는 “2003년 이후 시행된 의∙치의전원 제도는 과학기술계, 특히 바이오 관련 분야 고급인재 양성과 수급에 심각한 타격을 주고 있다”고 말했고, 물리학과 교수 출신 박영아 의원도 의전원 도입 후 이공계가 피폐화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정부는 현장의 목소리를 이해하는데 7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의사가 되기까지 정규 교육은 6년이며, 수련을 위해 인턴 1년, 레지던트 3년 또는 4년의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후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임상강사 기간을 2년 또는 3년을 더하기도 합니다. 이런 특수한 과정을 거쳐야 조심스럽게 전문가라고 이야기하고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고도로 전문화된 분야의 생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정부 부처 관계자들이 독단적으로 정책을 만들고 있습니다. 전문가의 의견에 귀를 닫고 또다시 국민의 건강, 환자의 안전을 위협할 시행착오를 ‘좋은 약은 입에 쓰다’며 들이밀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오랜 기간이 지나야 문제를 인정하게 될지, 또 어떤 사람이 피해를 보아야 할지, 또 얼마의 재정을 쏟아붓고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게 될까요?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닙니다.

의료 자원의 분배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 자원의 분배는 의료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사회적인 현상을 해결하지 못한 채 일부분만을 통제하면 부작용이 반드시 생긴다는 것을 여러 정책에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발전은커녕 여러 번 똑같이 되풀이된 정책을 또 다른 허울 좋은 제목으로 포장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설령 좋은 의도로 만들더라도 국민의 건강과 많은 이들의 앞날을 결정할 정책은 실패해서는 안 됩니다. 이전까지 꾸준히 외쳤던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여 과거의 잘못을 다시는 답습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의대정원 증가와 공공의대 설립에 강력히 반대합니다.


2020년 7월 31일
대한전공의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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