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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ULTURE

국수 단상(斷想)

슬로푸드, 슬픈푸드?


 


먹거리가 시원치 않았던 시절!


지금은 유기농재배 운운하면서 일부러 잡곡들을 선호하지만

보릿고개 시절엔 쌀보다 보리가 훨씬 더 많은 밥으로 끼니를 때웠다.


그것도 하루 세 번이 아닌, 고작 두 차례 뿐이었다.


점심(點心?)은 말 그대로 가슴(心)에 점(点)만 찍고 넘어가곤 했다.


아스께끼 얼음과자와 찹쌀떡이 최고의 간식이던 그 시절엔

고구마, 감자, 옥수수, 호박죽, 개떡, 칡뿌리, 배추꼬리, 싱아, 수수깡 등이

간식 아닌 주식으로 심심찮게 작살났다.


그 땐 늘쌍 먹어대서 물린 것들이

이젠 외려 ‘웰빙식’이니 ‘슬로푸드’니 하며 어줍잖게 꼴값이 대단하다.


여름에 점심으론 앞마당의 평상에 둘러앉아

상 한가운데 된장투가리 놓고, 식은 보리밥에 짠지 하나가 전부.


그리고 풋고추와 고추장이면 그만이었다.


어쩌다가 상추쌈, 호박잎, 피마자잎, 깻잎, 쑥갓, 콩잎 등 중에서 하나가 마련 된 쌈밥이면

말 그대로 진수성찬이었다.


'유기농식품' 운운하면서

지금은 지천인 호박과 오이지도 그땐 아주 가끔씩만 구경할 수 있었다.


쌈밥도 물릴 때 즈음엔 어머니는 이따금씩 별미를 마련해주셨다.


호박칼국수, 오이냉국, 수제비, 콩국수, 녹두지지미, 김치말이국수, 비빔국수, 멸치국수…….


변변치 못한 건건이 나부랭이에 어울리는 끼니론 역시 국수가 제격이었다.


짠지 하나면 반찬으로 족했고, 아니 굳이 반찬이 하나도 없어도

국수만이라도 있어 허기진 뱃고래를 채울 수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겨우내 김치 쪼가리 하나로 지낼 때도 허기질 즈음 초저녁의 동치미 국수는 별미였다.

 


김칫속 마련용 챗감하고 남아 겨우내 장독에서 푹 삭은 무쪼가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궁합은 시원함의 극이었다.


반찬이래야, 새우젓, 조개젓, 굴젓 등의 짜디짠 젓갈류가 고작.


아버님이 즐겨 드시던 것들이기에 우리 자식들도 그냥 주시는 대로 감지덕지 입에 넣어야만 했다.


밀가루음식도 흔치 않던 그 시절이지만 때마침 옆집에 국수공장(?)이 있어 

정말 질리도록 국수를 삶아 먹었었다.


떡은 즐겨먹어도 밀가루음식이라면 짜장면과 빵도 입에 대지 않던 내가

이제는 국수얘기만 나오면 은근히 군침이 돈다.


이제는 오히려 향수어린 예의 맛집 순례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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