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검색창에 몇년전 동영상이 올라왔다.
신종플루보다 백신이 더 위험하다는 미국폭스TV대담동영상이었다.
한 감염전문의가 나와 자신은 시장에 급조되어 나온 신종플루백신이 효력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많은 양의 첨가물이 들어있어 안전성이 우려되기 때문에 자신은 물론 가족들에게도 맞히지 않을 것이라 강변한다.
채 20년이 안되었을게다.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작고하신 당시의 회장께서 잡지의 기사 하나를 주며 급히 요약하라는 지시가 있었다.
기사는 독일의 안티백신그룹의 활동에 대한 것이었다.
내용에 대해 보고를 드리니 우리나라에도 조만간 이와 유사한 단체가 출현하는 사태가 올지 모르니 대비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당신께서는 이미 안티백신그룹의 활동을 알고계시는 듯 했다.
몇년이 지난 후.
우리나라에서 DTP부작용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며 백신접종 자체가 미디어로부터 집중적으로 무차별공격을 받는 상황이 발생했다.
미디어의 십자포화에 화답을 하듯 인터넷에는 안티백신을 표방하는 사이트가 출현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 사이트는 다행히 영향력이 전혀 없었고 그들의 활동 역시 매우 미미한 수준이었다.
사이트의 성격 역시 안티백신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백신접종을 신중히 하자는 취지가 더 강해 보였다.
안티백신단체의 출현 대신 사실상 미디어의 집중적인 보도로 인해 DTP를 비롯해서 전반적인 백신접종기피현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났을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안티그룹의 활동이 별 움직임이 없는 이유는 어쩌면 의사들이 합세한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우리나라에는 백신관련 전문가들이 아직 이런 활동에 참여한 적이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드물게 안티백신을 주장하는 기사나 책자들이 소개된다.
문제는 내용을 보면 기가 찰 정도로 백신에 대한 전문성도 없고 아예 무지한 수준이라 아무리 순진한 사람이라도 설득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비교적 최근들어 안티백신 움직임이 촉발된 것은 1990년대 영국의 한 의사가 MMR접종과 자폐증발생증가에 관계가 있다는 주장을 하면서부터이지만 뿌리는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세기초, 두창백신 접종법안이 영국에서 통과되었다.
우두바이러스로 만든 백신이 공급되면서 두창백신은 의무접종이 되었다.
의무접종이란 강제접종을 의미했고 강제에는 늘 그렇듯 반발이 따랐다.
공권력에 반발심이 생긴 사람들 사이에서는 괴담이 돌았다.
다른 유럽국가들 사이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소바이러스로 만든 백신을 접종하면 사람이 소로 변한다는 말도 안되는 괴담.
두창접종을 한 사람의 머리에 소처럼 뿔이난 만화가 등장하기도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백신을 어떤 원료로 만들었는가에 관심이 많다.
지금도 일부에서는 원숭이에서 유래된 세포에서 생산된 폴리오백신을 맞으면 AIDS에 걸리고 사람에서 유래된 세포를 사용한 어떤 백신을 접종하면 암에 걸린다는 괴담이 도는 것도 동일한 배경일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안티백신운동이 비이성적이고 비과학적이인 괴담에서만 출발된 것은 아니었다.
문제가 된 것은 최근에도 안티백신 논란의 중심이 그러하듯이 백신의 효능과 안전성이슈였다.
당시 반복사용되던 주사기는 혈액감염병을 사람들사이에 전파하였고 부작용이슈가 문제시되기 시작했다.
백신의무접종은 대중이 무지몽매하므로 계도대상이라는 판단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두창백신의 접종은 의무화되었고 강제로 진행되는 과정에서 접종을 거부하는 자는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접종자가 증가할수록 부작용 또한 증가되었고 거부감 역시 커질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느끼기에 백신접종도입후에도 저소득층의 사망률은 꾸준히 증가했으며 마침내 백신접종과 사망률은 별 차이가 없다는 인식이 싹트기 시작했다.
요즘과 같은 과학적인 조사방법이나 신뢰성있는 통계를 돌릴 수 있는 시대도 아니었다.
예나 지금이나 빅데이타(?)는 유리한 데이타를 끄집어내 자기 입맛에 맞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질병은 백신에 의해서 예방되는 게 아니라 깨끗한 물, 영양상태, 위생조건 등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났다.
백신반대론자들은 질병이 역학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공중보건문제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여기에 사회급진세력이 동참하면서 두창백신 접종반대론자들의 그룹이 형성되어 조직적으로 백신접종을 거부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소위 안티백신그룹 활동의 효시이다.
1850-60년대에 걸쳐 안티백신운동은 확고한 자리를 구축했다.
통상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뜻으로 쓰이는 conscientious objector라는 말의 실제 의미는 <백신접종을 거부>한다는 데에 어원을 두고 있다.
이후 안티백신그룹의 활동은 폴리오백신의 효능에 대한 의문과 부작용, 그리고 백일해백신의 부작용이슈를 거치면서 확대재생산되었고 1990년대 MMR백신에서 동일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전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특히 안티백신운동은 최근 HPV백신접종에 대해 강한 반감을 보이면서 백신접종거부운동을 펼쳤으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실패하는 듯 보였다.
그러다가 이번 일본의 백신 국가주의와 만나 의기가 투합되면서 정점을 찍게 되었다.
마침내 안티백신그룹은 일본정부가 NIP로 관리하던 HPV백신에 대해 어쨌든 HPV백신 접종권장 잠정중단이라는 성과를 낸 것이다.
길게는 70-80년을 어쥬번트(면역증강제)로 사용해온 물질을 마치 독극물로 지목한 지난 3월의 심포지움발표에 대해 일본정부가 이렇다할 반박조차 못하고 무기력한 태도로 일관한 것은 차라리 그로테스크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안티백신운동은 결코 이웃나라만의 일은 결코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나라에 안티백신그룹이 아직 존재감이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불안해 보이기도 한다.
언제가 될지 알 수는 없으나 이 한반도에도 전문가가 포함된, 매우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논리를 갖춘 안티백신그룹은 반드시 출현할 것이다.
어느 국가보다도 원리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우리 나라에 이와 같은 그룹이 형성되면 전세계 다른 나라의 어느 단체보다 과격해질 확률이 높다.
판데믹과 마찬가지로 대비가 필요하다.
각설하고,
이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하더라도 어쨌든 백신쟁이들은 지금보다 모든 과정에서 더 세련되고 논리적으로 될 필요가 있다.
공부를 지금보다 더 많이 해야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