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8편 응모, 9편 선정, 대상에는 ‘아침의 퇴근길’ 선정돼
수필문학을 통해 생명 사랑의 의미를 널리 알리기 위해 2005년 제정
보령제약(대표 안재현, 이삼수)이 제정해 15회째를 맞은 보령의사수필문학상 대상에 이대목동병원 남궁인 조교수의 작품 ‘아침의 퇴근길’이 선정됐다. 시상식은 12월 5일 오후 6시 30분 보령제약 본사 중보홀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 10월 말까지 진행된 이번 공모에는 총 88편이 출품되었으며 한국수필문학진흥회(회장 이상규)에서 심사를 맡아 총 9편의 작품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대상에 선정된 남궁인 조교수의 ‘아침의 퇴근길’은 담담한 이야기 속에 어머니와 아들인 작가 사이에 오가는 따뜻한 배려, 부드러운 소통과 깊은 사랑이 배여 있는 작품이다.
병원 응급실 담당의사인 필자는 남들이 출근할 때 퇴근을 한다. 밤새 환자들에게 시달린 필자는 지칠대로 지쳐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금세 졸음에 빠진다. 때문에 아들은 어머니를 도움 상대로 선택했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이 잠에 빠지지 않고 무사히 집까지 도착하게 하기 위해 무슨 이야기든 계속 들어주고, 무슨 이야기든 계속 이어 간다. 어머니는 외삼촌 집에서 밥을 먹은 이야기를 하고 아들은 간밤에 죽어나간 환자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 결도, 초점도 일치하지 않지만, 모자간의 사랑과 배려 그리고 깊은 신뢰를 담담히 그려낸 것을 높이 평가받았다.
이와 함께, 금상에는 장석창 원장(부산 탑비뇨기과의원)의 ‘마주도는 팽이’, 은상에 김지선 원장(맘편한내과의원)의 ‘1%’와 홍유미 전문의(전북대병원)의 ‘희비의 진통실 앞에서’가 선정되었으며, 동상에는 이재명 원장(미래제일산부인과의원)의 ‘모유박스’, 이재철 교수(서울아산병원)의 ‘친구’, 이성희 전문의(보령아산병원)의 ‘오늘 이야기’, 이윤영 원장(안성한주의원)의 ‘가을의 선물’, 정찬경 원장(부평 밝은눈안과)의 ‘아플 수 있어서 다행이다’가 선정됐다.
대상에게는 상패와 부상으로 순금 25돈메달과 함께 수필 전문잡지 ‘에세이문학’을 통해 공식등단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금상, 은상수상자에게는 각각 15돈, 10돈의 순금메달이 수여된다.
보령의사수필문학상은 '당신이 있기에 세상은 더 따뜻해 집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의사들이 직접 쓴 수필문학을 통해 생명을 존중하고, 의사들이 써 내려가는 감동의 이야기가 이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의술임을 알리고자 하는 보령제약의 뜻을 담아 제정한 상이다.
[ 제 15회 보령의사수필문학상 대상 ]
아침의 퇴근길
나는 응급실에서 일하는 의사다. 근무를 마치면 늘 아침에 퇴근한다. 근 몇 년간 아침이 아닌 시간에 퇴근해본 적이 없다. 남들이 막 활기차게 출근하는 시간은, 내겐 혼곤하게 근무를 마친 시간이다.
그 길은 극도로 피로하다. 나처럼 응급실근무를 마치고 아침에 퇴근하는 동료의료인의 에피소드는 가끔 영웅담 같다.
“좌회전 기다리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일어나니 뒤차 운전자가 깨우고 있었어.”
“아침 10시에 대리운전을 불렀는데 자다가 못 받았어.”
“어제 처음으로 지하철 종점에 가 보았어.” 같은 것이다.
나도 한번 안산에 있는 병원에서 서울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는데, 일어나니 그대로 병원앞에 있었다. 잠든동안 버스가 서울을 한바퀴 순회하고 돌아온 것이다.
요즘은 조금 여유가 있어 운전해 출퇴근 한다. 하지만 피로감은 여전하고, 퇴근길 차안은 몽롱하고 공허하다. 정신이 가물거려 곧 잠들 것 같고, 조그만 일에도 짜증이 샘솟고, 간밤에 있었던 사건들이 어른거린다. 어서 집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만이 굴뚝같다. 정신이나 육체가 모두 흘러내릴 것 같은 피로라고 할까. 이때 수면 외에는 백약이 무효다. 어떤 작업도 불가능 하고, 웬만한 각성제로도 정신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동생에게도 걸고 친구에게도 걸고 애인에게도 걸었다. 잡담을 하거나 간밤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정신을 붙들고 응어리를 조금 해소하며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하거나 활기차게 하루를 시작했거나 늦은 아침잠에 빠져 있다. 해가 중천에 있지만 혼자 깊은 심야에 있는듯한 사람이 털어놓는, ‘고통에 울부짖는 사람’이나 ‘유가족의 통곡’이나 ‘근육과 뼈가 흩어지’는 넋두리를 정기적으로 들어주기는 무리가 있는 시간이다. 이 전화가 타인에게는 매우 곤란한 전화임을 곧 깨달았다. 세상 어떤 애인이라도 이 통화는 인내하기 어려울 것이다.
본능적으로 어머니에게 전화하기 시작했다. 몇 번쯤 전화하자, 어머니는 자신에게 주어진 새로운 책무를 파악하셨다. 까딱하면 잠들어버릴 아들과 수다를 떨어 안전하게 집까지 보내는 일이다. 언제 근무라고 알려드리는 것도 아니지만, 늘 어머니는 아침에 즉시 전화를 받아, “어젯밤 당직이었네, 얼른 가서 쉬어야지”라는 말로 통화를 시작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시간을 보낸다. 어머니는 외삼촌댁에서 밥 먹고 온이 야기를 하고, 나는 한강에서 건져온 시체이야기를 하는 식이지만, 통화는 그럭저럭 즐겁다. 어머니는 십년넘게 들어서 지긋지긋할 사건사고 이야기도 처음처럼 들으신다.
허나 그 시간에 졸린건 나뿐만이 아니다. 어머니도 하루를 시작해야 하고, 내 전화로 잠에서 깨실 때도 있다. 그럴 때의 통화는 각기 중구난방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정신이 오락가락하지만, 어머니도 갑자기 어제 뭐 했느냐고 묻기도 하시고(당연히 당직을 섰다), 한 이야기를 또 하시거나, ‘어디쯤 왔냐’는 질문을 서너 번 하기도 하신다. 가끔은 피곤하거나 귀찮은 기색에도, 어머니는 내 차에서 주차음이 울리고서야 전화를 끊는다. 당직 다음 날 중요한 일에 지각한 이후로, 어머니는 내게 일정을 묻곤, 받을 때까지 울리는 알람전화도 해주신다.
어머니의 목소리로 퇴근하는 차는 매일 평화롭다. 나는 그 차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도 좋다. 개인적인 일, 가족의 일, 과거의 추억, 시사현안 같은, 어떤 주제를 어떤 식으로 털어놓아도 괜찮다. 상대는 세상에서 가장 나를 배려해서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조용히 대답을 하시곤, 자신의 이야기를 덧 붙인다.
나는 방금 전까지 응급실에서 있었던 일까지도 쏟아낸다.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가장 생생하게 전달받는 사람이 된다. 가끔은 간밤에 배우자를 잃은 남편의 통곡을 설명하다가 같이 울기도 한다. 그럴 때 어머니는 조용히,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원래 더 이상 살아가기 어려운 법이란다.” 같은, 나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답변을 해주신다. 그런 순간에는 바깥의 날씨까지도 생생한 것이 된다. 그렇게 그 전화는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처연한 종류의 전화일지 모른다. 의식이 가물거리는 아들과 그 의식을 붙잡기 위한 어머니의 통화이기 때문이다. 자식은 아침마다 위험에 처하고, 어머니가 자식을 항상 구해서 건져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늙어버린 나는 어떤 순간을 추억하며 살아갈까. 처음 의사면허를 받은 순간이나, 서점에서 내가 쓴 책을 집어든 순간이나, 티브이 속에 나를 보았던 순간일까. 그 순간들은 강렬했지만 당연해져 점점 희미해질 것이다. 하지만, 힘든 밤을 보내고 맞은 아침공기를 들이켜며 혼곤한 정신을 붙들고 거는 전화, 나를 지키려는 어머니의 음성과 곧 잊어버릴 잡담들, 수 없이 바뀌어 하루도 같지 않던 날씨들, 그 강변과 담벼락과 수 많은 차와 부슬거리는 빗줄기와 밥은 먹었냐고 묻고 웃던 장면.
나는 지금도 그 순간을 경험하고 있지만, 이것이 영영 기억에 남아 그리워하며 살 것 임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