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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의대 정원 확대 등 의료계 현안에 대한 젊은 의사들의 성명서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희는 대학병원에서, 코로나 선별진료소에서, 도서산간지역에서 근무하고 있는 젊은 의사들입니다. 먼저,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은 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대구ㆍ경북 지역에 코로나 환자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지난 2월, 인력이 부족하다는 부름에 의사 수백 명이 나선 것을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이런 사태를 목도하며, 지금과 훗날의 감염병 관리, 역학 조사, 백신 개발 등을 위해 의사 인력이 더 필요하지 않겠냐는 국민 여러분의 걱정 어린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나 국민 여러분의 성원 덕분에 지난한 싸움을 계속할 수 있는 일선의 의사들로서 감히 말씀드리건대, 현재 정부와 여당이 추진하는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 정책은 본래의 취지인 지역ㆍ공공ㆍ필수의료 활성화가 아닌, 현재도 왜곡되어있는 의료를 더 왜곡시키고, 건강보험 재정을 고갈시키는 자승자박 정책입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 출산율 0명대의 ‘인구소멸국가’에 진입하였으나, 의사 증가율은 2.4%로 OECD 국가 중 1위이며 의료 접근성도 전세계에서 가장 높습니다. 국민 여러분이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하다 느끼는 것은 수도권에 대다수의 의료기관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 여러분이 원하는 때에 치료를 받기 어렵다 느끼는 것은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중증, 경증 구분 없이 모두가 소수의 병원으로 집중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공공의료원보다는 민간병원을, 지방병원보다는 수도권 대형병원을 선호하는 국민이 많은 상황에서, 의무복무하는 ‘지역의사’를 선택할 것이라는 생각은 망상에 가깝습니다. 한명의 의사를 키우는데 약 2~3억의 비용이 들기 때문에, 현재 정부와 여당이 추진 중인 의사 증원을 위해서는 1조원 이상의 세금을 들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전공의 수련 비용에 단 한푼도 지원한 적이 없는 정부에서, 정원 50명의 서남의대도 제대로 관리ㆍ감독하지 못해 폐교시킨 나라에서, 또다시 부실의대를 양산하는 포퓰리즘적 정책을 내놓은 것은 아닐지요? 정책의 성공과 목표의 달성은 선한 의도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오로지 꼼꼼한 설계와 충분한 논의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정부와 여당은 지금이라도 다시 귀를 열고 젊은 의사들의 외침을 들어야 합니다.

저희 젊은 의사들은 이미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주당 80시간씩 근로기준법의 2배 이상을 일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밥그릇 투쟁’이 아니라 왜곡되고 붕괴 직전의 의료를 최전선에서 막아내고 있는 병사의 외침입니다. 무엇이 얼마나 잘못되어있는지 36시간 연속 근무, 병가조차 허락되지 않는 병원에서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크고 매섭게 울부짖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우리나라 인구당 간호사 수는 OECD 평균보다 1.5배 많지만,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에서부터 지역 의원까지 간호인력 수급에 차질을 겪고 있습니다. 살인적인 업무환경과 처우 개선이 이뤄지지 않은 단순한 인력 증원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입니다. 정치 슬로건일 뿐인 의대 확대 정책이 아니라, 더 중대하고 실질적인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저희의 외침을 외면하지 말아 주십시오!

3분 진료, 효과도 모호한 일부 비급여 진료 행위 등 국민여러분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의료계의 행태도 많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 젊은 의사들은 남 탓만 하지 않고, 의료계의 자정에도 힘쓰겠습니다. 그 움직임의 시작이 바로 이것입니다. 잘못된 정책과 그것이 불러올 암울한 미래를 막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전국 전공의들이 단체행동에 임하는 것을 너그러이 양해해주십시오. 다만, 그로 인한 모든 불편과 수고로움은 전공의가 아닌, 의사공급 과잉사태를 만들어 지금의 의료를 더 왜곡시킬 정책을 펴는 정부와 여당에 물어주십시오.


현장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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