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구중심병원으로 지정된 한 병원의 R&D협력위원회의 위촉식이 있었다.
거의 모든 연구중심병원이 표방하는 것은 translational research이다.
임상에서 기초로, 기초에서 임상으로 연구영역을 응용하고 확장시킴을 의미한다.
전에는 간헐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던 차원의 연구비지원이나 혹은 술자리에서 임상의사들이 팁(?)으로 이러이러한 약을 개발해보라는 주문을 시스템화한다는 측면에서 이는 매우 긍정적이라고 본다.
정부의 연구중심병원 설립에 대한 초기발상이 어떤 의도였는지에 대해서는 왈가왈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병원들의 취지에는 동의한다.
그 자리에 참석한 관련업계의 위촉대상자는 십여 명 정도 되었다.
그런데 평소 안면이 있던, 그 얼굴이 그 얼굴인 사람들이 다수 올 것이리라던 내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뻔하게 대형제약사의 인사들이 주축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참석자들은 의외로 다양했다.
주축은 없었으며, 의료기기, 세포치료, 제형개발기술, 진단기기 등등 여러 전문 분야의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다.
뒷풀이로 간단한 술자리가 있었다.
대화의 수준은 주최가 된 병원의 고위보직자들에 대한 의례적인 감사의 자리가 아니라 매우 심도있는 토론이 오갔다.
대화내용이나 수준 역시 막연한 선입견으로 제약주변부의 벤처기업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연구를 위한 연구정도가 아니었다.
그들은 프로였다. 회사는 작았지만 거기에 아마추어는 없었다.
그들은 젊었고 표정은 밝았으며 자신에 차있었다.
연구보다는 젯밥에 관심이 있을거라고 평소 벤처에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던 필자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은 있었다.
최근 들어 의료분야가 전체는 아니지만 여러 분야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달을 하였다는 것.
과거 심각한 질환으로 분류되던 질병이 언젠가부터 쉽게 컨트롤할 수 있게 되고 고난이도의 수술이 의외로 생존확률을 크게 높아졌다는 것.
반면에 상대적으로 대수롭지 않던 질병의 확산에 당황해하기도 한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이면에 이미 국내에서도 의료계가 첨단으로 무장한 벤처회사들과 다양한 차원에서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사실말이다.
여러가지 주제로 테이블마다 벌어지는 열띤 토론은 공통적인 결론에 당면하고 있었다.
그들의 고민은 결실의 가시적인 단계가 되면 결국 자본에 기술을, 회사를 팔아야한다는 현실이었다.
그것은 젯밥에 대한 관심보다는 마치 키우던 자식의 입양결정을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과 유사한 아쉬움이었다.
물론 욕심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더구나 감상적으로 해석할 일 또한 아닌 것임은 안다.
제약산업은 규제산업이라는 명분때문에 정부의 업계에 대한 태도는 여전히 매우 고압적이고 권위적이다.
정부의 업계에 대한 권위적인 태도에 대해 업계가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과거에 비하면 완화되었다는 일부의 의견이 있긴 하지만 병원과 제약회사의 관계는 여전히 종속적이다.
처방권을 가진 의사들은 때로는 한 기업의 흥망을 결정할 정도의 파워그룹으로 남아있으며 사회적으로도 고질병인 리베이트 이슈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불현듯 연구중심병원의 활성화는 아마도 두 스테이크홀더간의 종속관계를 파트너관계로 전환시키는 긍정적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의료계와 기존업계와의 관계에서보다 병원과 여러 차원에서 관계형성이 새롭게 형성되기 시작한 벤처업계와의 관계에서 시작될 가능성이 높다.
한번 형성된 관계는 어지간해서는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제약업계의 실력이 지금보다 좋아질수록, 연구개발의 승률이 높아질수록 전환의 속도는 빨라질 것이다.
게다가 상대적으로 정부의 권위적인 입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연구중심병원이 새로운 역할을 통해 업계의 입장에 서게 된다면 업계는 뜻밖의 원군을 얻게 되는 셈이다.
업계는 연구중심병원과의 공조를 통해 이이제이를 패러디한 이학제관의 전략을 고려해봄직하다.
이와같은 환경변화의 방향이 정향성이 될지 아닐지는 오롯이 업계의 선택과 판단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