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4/6 (월) '제중원 뿌리' 논쟁 재점화, 서울대병원의 입장-백재승/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장
☎ 왕상한 > ‘제중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병원입니다. 올해가 문을 연지 13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하는데요. 그런데 이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오래 된 논란이 제중원 뿌리 논쟁이라고 합니다. 어떤 내용일까요. 그 내용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역사문화원의 백재승 원장입니다. 원장님 안녕하십니까?
☎ 백재승 > 안녕하세요.
☎ 왕상한 > 먼저 이 제중원의 계승 논란과 관련된 것들 몇 가지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알렌의 요청으로 제중원이 설립되었다는 것이 세브란스 병원 측의 주장인 것 같은데 맞는 얘기입니까?
☎ 백재승 > 역사적 사실과 너무 틀린 얘기입니다. 제중원 설립이 130년 전 1885년 4월 3일에 개원됐는데요. 이 고종하고 조선 정부는 4년 전 1881년에 일본에 시찰단을 파견해서 서양식 의료를 이미 탐색했고요. 1년 전에 정부기관 찬성금이라고 있는데 거기서 이미 서양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고요. 또 그 해에 일본에 주재하던 미국 감리회선교사 맥클레이라는 사람이 건너왔는데 알렌이란 분은 북장로회 소속이고요. 이분은 미국 감리회 소속인데 와서 고종에게 서양식 병원의 설립을 이미 제안했고 그때 고종이 그걸 허락했죠. 즉 말하자면 알렌이 등장하기 전부터 서양식 국립병원 설립은 이미 추진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갑신정변이 일어났고 그때 알렌의 그 서양의술을 목격한 고종과 고관들이 국립병원 설립이 필요하겠구나 하고 서두르게 된 거죠. 그때 알렌은 갑신정변 때 부상을 입은 그 당시 정계 엄청난 실력자였던 민영익씨를 치료했는데 그 바람에 고종하고 명성황후의 신임을 얻게 되었고 그분이 알렌이 편지를 통해서 옛 서양식 국립병원 설립을 건의했습니다. 이렇듯 알렌이 그 제중원 기원에 기여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조선정부의 근대화 프로젝트 일환 된 그런 서양의료 도입계획에 알렌의 건의가 나중에 더해진 결과라고 봐야 될 것입니다.
☎ 왕상한 > 그러면 제중원이라고 하는 곳 자체의 이름이 등장한 것은 원장님 말씀에 따르자면 1885년 4월 3일이 맞습니까?
☎ 백재승 > 맞습니다.
☎ 왕상한 > 그러면 이 알렌이라고 하는 분의 등장에 의해서 소위 서양식 국립병원이 된 것은 언제 일이었습니까?
☎ 백재승 > 그게 1885년 4월 3일 날,
☎ 왕상한 > 1885년 4월 3일 날 제중원이 세워졌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 백재승 > 예, 그렇죠.
☎ 왕상한 > 그러면 그때 세워지게 된 것이 알렌에 의해서 세워진 바로 그 날짜가 85년 4월 3일이다 라는 건가요?
☎ 백재승 > 그건 알렌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 1880년부터 조선정부가 근대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서양의료도입계획이 이미 진행되고 있었는데
☎ 왕상한 > 그 이전부터.
☎ 백재승 > 예, 이전부터. 아까부터 81년부터 라고 말씀드렸는데 1881년. 알렌이 그때 갑자기 중국에서 들어오면서 그 당시 이제 갑신정변이란 사고가 있었죠. 그때 부상을 입은 분이 민영익이란 분이 그때 정계의 최고실력자였어요. 그 바람에 고종과 명성황후의 신임을 얻게 됐고 또 그걸 보니까 서양의술이 중요하겠구나 이런 사람들이 고정이나 고관들이 보니까 빨리 서두르자, 이래서 된 거죠. 말하자면 알렌이 기여한 건 맞지만 이미 조선정부는 서양의료 도입계획을 진작에 갖고 있었고 나중에 알렌의 건의가 더해진 정도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되겠죠.
☎ 왕상한 > 자, 그런데 이제 1894년 9월 26일 조선정부가 제중원의 운영권을 포함한 모든 권한을 미국의 북장로회 선교부에 이양을 했다는 것이지 않습니까?
☎ 백재승 > 그것도 잘못 알려진 건데 운영권만 위탁한 거지 소유권은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도 이것만 보면 안 되고 당시에 우리 나라 역사적 배경이 중요한데 1894년은 우리 역사에서 아주 파란만장한 아주 고단한 한해였죠. 동학농민전쟁이 있었죠. 청일전쟁, 갑오개혁이 연이어 발생했거든요. 특히 7월 23일 날 여러분 잘 아시는 일본군이 경복궁을 확 점령해버린 사건이 있어서 그때 고종과 정부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어요. 그 위기에서 제중원을 일본한테 뺏기지 않으려고 고육지책으로 제중원을 그 당시 선교 의료사인 그 에비슨에게 위탁한 것이죠. 소유권까지 양도한 것 아니었습니다.
☎ 왕상한 > 소유권은 정부가 갖고 있었다는 말씀
☎ 백재승 > 당시 계약조건에 의하면 조선 정부가 원할 때는 언제든지 제중원을 반환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에비슨 그때 의료선교사가 요구한 것은 자기네가 제중원 건물을 개보수 하면 우리가 반환할 때 수리비용은 지급해달라는 것뿐이었고요. 그래서 이들은 또 제중원을 운영하면서도 조선정부가 제중원의 운영권을 달라, 이럴까봐 굉장히 걱정했었습니다. 그래서 1904년에 에비슨이 제중원을 떠나 세브란스를 개원할 때 대한제국 정부는 개보수 비용을 내주고 제중원을 돌려받았죠. 다시 말하면 운영권만 위탁한 거지 소유권을 조선정부가 갖고 있었습니다.
☎ 왕상한 > 그런데 또 개원시 초대장을 보면 초대장에 ‘새 제중원 세브란스병원’ 이렇게 지칭돼 있다는 건데요.
☎ 백재승 > 그것도 조금, 이제 1904년에 그 제중원 의료진이 세브란스로 이동한 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세브란스병원이 직접적으로 제중원을 계승했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지금으로 생각하면 국립병원 제중원을 수탁 운영했던 사람이 아까 말씀드린 바 위탁운영 했는데 자금을 마련해서 자기 돈으로 1904년에 사립병원을 완공하고 독립한 다음에 그 기부자 이름을 따서 세브란스병원이라고 명명했는데 그러고는 그 세브란스병원이란 공식명칭하고 제중원이라는 종전 명칭을 함께 사용한 것이죠. 아마도 제중원이란 그 당시 브랜드 가치, 요새말로 브랜드 가치를 이용해서 세브란스 병원사업, 또 선교사업을 홍보하고 싶었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렇지만 자발적으로 국립병원 제중원을 떠나서 사립 선교병원인 세브란스병원을 세워놓고 세브란스병원이 국립병원 제중원을 계승했다 라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 왕상한 > 그런데 조선정부가 세브란스병원에 재정을 지원했다 라는 것이 세브란스가 제중원을 계승한 근거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답을 주실까요?
☎ 백재승 > 이것도 역사적 배경을 잘 알아야 되는데요. 재정지원을 했다고 하는 것이 1905년, 1906년인데 이때는 러일전쟁도 있었죠. 을사조약, 통감부 설치, 뭐 어려운 세상이었는데 이건 고종황제 뜻이라기보다 일본인이나 친일관료의 결정일 가능성이 높고요. 실제로 1908년에 세브란스의학교 1회 졸업생에 의사면허증에도 통감 이토 히로부미가 해결해준적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때의 재정지원을 근거로 세브란스 병원이 제중원을 계승했다는 주장은 적합지 않고요. 또한 조선정부의 그때는 찬성금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지원금을 지원을 갖다가 일본이나 영국 공사를 통해서 부탁해서 이끌어내자는 의료선교사들의 편지내용이 있었거든요. 이건 말이 부탁이지 로비를 통한 압력으로 어떻게 해보자는 생각이라고밖에 판단할 수가 없겠네요.
☎ 왕상한 > 끝으로 한 가지만 짧게 여쭤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제중원을 둘러싼 논쟁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의학의 뿌리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중요할 것 같은데 세브란스와 상당히 첨예한 입장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 같아요.
☎ 백재승 > 예.
☎ 왕상한 > 앞으로 이 문제는 어떻게 정리해나갈 계획이신가요?
☎ 백재승 > 그런데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연구해야될 점은 많죠. 사료가 적어서요. 그렇지만 지금까지 연구결과만 봐도 제중원은 우리나라의 민족적 국가적 자산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니까 의료선교의 역할만을 앞세워서 일개 사립기관이 그 역사성을 독점하려는 것은 저는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의료근대화에 의료선교는 정말 역할을 했습니다. 허나 당시 조선정부의 근대화 정책과 의지가 더 중요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고요. 또 제중원에 그래서 우리 서울대학이 제중원의 역사성을 독점하려는 생각은 없습니다. 의료선교의 역사도 기리고 기념해야 되지만 당시 조선정부의 의료근대화정책이나 의지가 이게 뭐 파묻히고 이게 보다 더 중요한 민족적 국가적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국공립병원의 책무는 그 서양의학 도입을 통한 의료선진화와 바로 전통시대 공공의료의 계승이다, 그것을 우리가 숙명적 과제로 기리고 기념해야 되겠다 라는 것이 저희 병원의 입장입니다.
☎ 왕상한 > 알겠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 백재승 > 감사합니다.
☎ 왕상한 > 지금까지 서울대병원 의학역사문화원의 백재승 원장이었습니다.
2015/4/8 (수) '제중원 뿌리' 논쟁 재점화, 세브란스병원의 입장 - 여인석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의사학과 교수
☎ 진행자 > 자, 지난 월요일에 서울대병원과 세브란스병원의 제중원 뿌리 논쟁과 관련해서 서울대병원 측의 입장을 한 번 들어봤었습니다. 그에 이어서 이번에는 세브란스병원 입장을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연세대학교 의 과대학의 여인석 교수를 연결해볼게요. 교수님 안녕하십니까?
☎ 여인석 > 예, 안녕하십니까?
☎ 진행자 > 지난 월요일 방송 혹시 들으셨는지 한 번 먼저 여쭤 봐도 될까요?
☎ 여인석 > 예, 봤습니다.
☎ 진행자 > 당시 서울대병원 측에서는 일단 국립병원 계승론을 이야기했습니다. 일단 알렌의 요청으로 제중원이 설립 된 것이 아니라 알렌이 등장하기 전부터 고종과 정부가 서양식 국립병원 설립을 준비했고 나중에 그저 알렌의 건의가 더해진 정도다, 이렇게 주장을 했거든요. 이 부분은 어떻게 보십니까?
☎ 여인석 > 먼저 언급하신 국립병원설 문제점부터 짚어보겠습니다. 그쪽 입장은 제중원이나 서울대병원이나 국가가 운영했음으로 연속된다는 주장인데요. 문제는 그 국가가 다 별개의 문제라는 점입니다. 서울대병원은 대한민국이 설립한 병원이고, 반면에 제중원은 조선왕조 병원으로 시작했죠. 더구나 그 사이에는 일본제국이 세운 그 총독부기관이 끼어있습니다.
☎ 진행자 > 각기 다르네요.
☎ 여인석 > 예. 그래서 만약에 서울대병원의 주장처럼 그 국립이라는 이유로 제중원이 서울대병원으로 계승되었다 라고 하면 대한민국은 일본 제국을 계승하고 일본제국은 조선을 계승했다, 다시 말해서 대한민국, 일본제국, 조선은 연속적이고 동일한 주체라는 사실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제가 보기에는 소위 이런 국립병원설은 조선의 성균관, 고려시대 국자감, 고구려 태학, 뭐 이런 것들이 다 서울대학의 기원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수준의 이야기라고 봅니다.
☎ 진행자 > 그런데 이제 이런 얘기도 하셨었습니다. 당시 고종과 정부가 부지, 건물, 행정인력, 또 예산 일체를 다 마련했고 제중원 운영규칙도 이미 작성했었다. 알렌이라든지 의료선교사들도 보고서 편지 등에서 제중원을 Government Hospital 그러니까 정부병원이라고 기록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제중원은 처음부터 미국인 의료선교사들에 의해서 운영된 거고 조선정부는 비용의 일부만을 지원했다는 이 세브란스 측 이야기하고는 좀 사실과 다르다, 이런 입장을 밝혔단 말이죠.
☎ 여인석 > 예, 보면 조선 정부가 제중원 선교사와 관련된 일을 처리할 때는 항상 미국 공사관에 공문을 보내서 처리했습니다. 만약에 조선정부가 제중원을 단독으로 운영했다면 그렇게 처리할 이유가 없었겠죠.
☎ 진행자 > 공문 처리를 했었기 때문에.
☎ 여인석 > 예.
☎ 진행자 > 단독으로 했을 이유가 없었다.
☎ 여인석 > 단독으로 했으면 그런 번거로운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선교사들과 1:1로 해서 필요한 부분들을 요청하거나 했겠죠. 그러나 그런 요청이 있을 때는 항상 미국 공사관에 공문을 보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 진행자 > 한편으로는 또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자, 한 가지만 더 짚어볼게요. 당시 우리나라 역사적 배경에 의해서 일본에게 제중원을 뺏기지 않으려는 고육지책으로 의료선교사죠. 에비슨에게 제중원 운영을 위탁만 한 거지 소유권까지 양도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또 했었단 말이죠. 이런 건 어떻게 봐야 될까요?
☎ 여인석 > 여기서 건물의 소유권과 병원의 운영권을 구별해야 됩니다. 예를 들어서 제가 남의 건물을 빌려서 병원을 하더라도 그 병원은 제 병원이지 건물주 병원이 아닙니다. 또 병원을 제가 다른 장소로 옮기더라도 제가 계속 운영하면 다시 말해서 운영자가 동일하면 병원의 연속성은 유지가 되죠. 그러면 반대로 서로 다른 주체가 다른 건물을 사용한다고 해서 동일한 주체라고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건 지금도 총독부용 건물을 사용하는 서울대병원에게 던지고 싶은 질문입니다. 달리 말해서 서울대병원이 총독부의원을 계승한 병원인가 하는 질문이죠. 사실 서울대병원이 일제강점기는 건너뛰고 조선시대로 가서 제중원이 우리 조상이다 라고 주장하는데 이건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고 할아버지부터 찾겠다 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서울대병원은 먼저 자신의 아버지가 누군지 총독부의원이 자신의 아버지인지 경성제대가 자신의 아버지인지 그것에 대한 입장부터 밝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진행자 > 일종에 아버지론이 될 것 같은데요. 자, 개원식 초대장에요. 새제중원 세브란스병원, 이렇게 지칭한 것과 관련해서 세브란스병원은 독립을 이미 해놓고 제중원이라고 하는 종전 명칭을 함께 사용한 경우가 아니냐, 다시 말해서 제중원이라는 것은 그 당시 그 브랜드 가치를 이용해서 세브란스병원사업, 즉 선교사업을 홍보하고 싶었던 게 아니냐, 이런 이야기를 했단 말이죠.
☎ 여인석 > 제중원이 서양식 병원이라는 브랜드 가치를 만든 사람이 누굽니까? 바로 거기서 일한 선교사들입니다.
☎ 진행자 > 그렇습니다.
☎ 여인석 > 그런데 브랜드 가치를 만든 사람은 따로 있고 그걸 선교 의사들이 이용했다, 이건 말이 안 되는 얘기죠. 그리고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사실은 조선정부도 세브란스병원을 제중원이라고 불렀습니다. 1906년 6월 4일자 구한국 관보에 보면 세브란스병원을 제중원이라고 부르면서 제중원 찬성금 3000원을 준다, 이런 기록이 나옵니다. 아시다시피 관보는 가장 공식적인 정부 기록이죠. 그래서 이건 조선정부에서 제중원과 세브란스의 연속성을 인정한 증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진행자 > 자, 그렇다면 제중원하고 세브란스병원의 관계, 저희 청취자 여러분들이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요.
☎ 여인석 > 우리가 어떤 기관의 연속성을 말할 때 핵심적인 부분은 운영주체의 연속성이죠. 그래서 제중원의 의료책임자는 미국 북장로교회에서 파송한 선교의사들이었고 바로 이 사람들이 세브란스병원에서도 동일하게 운영주체로 참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중원과 세브란스병원이 연속되었다 라고 말하는 겁니다.
☎ 진행자 > 그렇군요. 제중원 계승을 둘러싼 논쟁이 아주 오랫동안 이어져오고 있습니다. 소위 제중원 뿌리논쟁, 이렇게 저희가 표현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게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이 된 건가요?
☎ 여인석 > 먼저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부터 60년 전인 1954년에 세브란스의대 70주년 기념신문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서울의대가 축하 광고를 실었습니다. 그때는 서울의대도 제중원이 세브란스의 기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다는 증거죠. 서울대병원이 제중원이 자신들의 기원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건 1980년대부터입니다.
☎ 진행자 > 서울대는 80년대부터.
☎ 여인석 > 예, 그 이전에 서울대병원에 대한 역사에 관한 어떤 자료에도 제중원에 대한 언급이 나오지 않습니다.
☎ 진행자 > 그렇다면 왜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지 이런 의문을 가지시겠군요.
☎ 여인석 > 그래서 저는 1980년대부터 서울대병원에 의도적으로 제중원이라는 기원 만들기 작업에 착수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이걸 일종의 제중원 공정이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 진행자 > 사실 청취자 여러분들이나 저나 이런 제중원 뿌리논쟁보다는 훨씬 더 양질의 서비스에 관심이 많다, 솔직한 입장을 말씀드리고 싶거든요. 그런데 어찌됐건 이런 문제가 뿌리논쟁으로부터 시작됐다 라고 하면 이유가 분명히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정리하실 생각이신지요?
☎ 여인석 > 서울대병원이 전통시대 공공의료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 제중원을 기념한다, 뭐 이런 말을 하는데요. 이건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전통왕조시대 공공의료는 국왕의 시혜라는 이념에 바탕을 두죠. 궁극적으로는 왕이 백성을 어여삐 여겨서 치료해준다, 이런 가부장적인 봉건 이데올로기의 표현입니다. 반면 현대 민주국가에서 의료라는 건 국민의 권리죠. 그래서 서울대병원은 그런데 이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이 세운 병원입니다. 그런데 현대 민주공화국의 국립병원이 과거 왕조시대 시혜이데올로기의 정신적인 기원을 찾겠다, 이건 굉장히 퇴행적이고 시대착오적이죠. 그래서 저는 지금 서울대병원이 소모적인 이런 소모적인 뿌리논쟁을 일으켜서 정력을 낭비할게 아니라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바람직한 의료기관의 역할이 뭔가, 그것에 대해서 미래지향적인 고민을 같이 해야 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 진행자 > 예,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지금까지 연세대학교 의과대학의 여인석 교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 여인석 > 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