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5.10 (토)

  • 구름많음동두천 17.6℃
  • 맑음강릉 20.3℃
  • 구름많음서울 18.2℃
  • 맑음대전 18.5℃
  • 맑음대구 19.0℃
  • 맑음울산 20.0℃
  • 맑음광주 18.4℃
  • 맑음부산 19.1℃
  • 맑음고창 18.4℃
  • 맑음제주 21.3℃
  • 구름많음강화 15.3℃
  • 구름조금보은 17.3℃
  • 맑음금산 18.1℃
  • 맑음강진군 18.7℃
  • 구름조금경주시 20.7℃
  • 맑음거제 19.7℃
기상청 제공

칼럼

백신 이야기


한 때 우리나라 약업계에 백신을 하는 회사는 바보라는 인식이 있었다.

이익도 별로 없고 경쟁은 과열인데다 부작용이라도 한건 터지면 마치 백신회사에서 살인을 저지른 것처럼 온 나라가 흥분했다.

당시 국내백신생산의 필요성을 역설하니 한 전문가 왈 '누가 너희더러 백신 만들어달라고 한 사람 있었느냐'고 했다.

수입해서 쓰면 되는데 왜 후진기술을 가지고 생산한답시고 자꾸 시끄럽게 일을 만드냐는 것이었다.

정부도 미디어도 학계도 모두 국산백신에 대한 비난 일색이었다.

그나마 업계사정을 이해해준 것은 식약청 등 정부기관 뿐이었다. 불과 십 수 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백신입국'이라는 사자성어까지 등장했다.

한 마디로 씁쓸했다.

대학시절에 읽었던 오리아나 팔라치의 소설 <한남자>가 떠올랐다.

 

내용을 약간 패러디하면 국내백신의 문제점을 질타하던 집단과 국내백신생산을 찬양하는 집단은 동일집단이다.

그들은 언제 또 표정을 바꿔 국내백신생산의 문제점을 집중적으로 부각시키지는 않을런지.

깃발만 바꿔들면 태도가 돌변하는 동일한 시위대에 대한 불길한 기억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것이 알고 지내던 사람이 다른 모습을 하는 것이다.

 

2009 신종인플루엔자유행 당시 외자사들은 정부와의 계약체결시 백기투항을 요구했다.

한국에 공급한 백신에 대해서는 부작용이 나서 백신을 맞은 사람이 심각한 부작용이 생기더라도, 그리고 자신들은 전 세계를 상대로 공급을 하는 입장이니 정부와 계약된 물량이 부족하게 공급이 되든, 또는, 납기일을 못 맞춰 늦게 백신이 공급되건 거기에 관한 책임을 묻지말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 계약서를 들고 정부기관에 들어가 내용을 전달하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재촉에 못 이겨 전달된 계약서를 보고 이건 한일합방문서나 다름없다고 공무원들은 실소를 지었다.

결국 정부기관은 이 계약서에 서명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계약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듯 보이자 그들은 한술 더 떠 아무래도 계약서로는 안심이 안 될 뿐 아니라 한국의 법은 이러한 계약서내용을 뒷받침할 만한 법적 근거가 없으니 법을 바꾸라는 요구였다.

차일피일 시간을 끌다가 결국 이 요구는 정부에 전달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국정부와의 계약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없는 사람'은 무시당하게 되어있다.

이걸 그대로 확대한다면 '없는 나라'는 무시당하게 되어있다.

그런데 지난 판데믹에서는 구매능력이 있어도 생산능력이 없으면 선진국, 후진국을 가릴 것 없이 무시를 당했다.

자존심으로 따지면 둘째가라 해도 서러워 할 일본정부는 우리나라와 똑같은 조건을 제시받고 마침내 신종인플루엔자백신을 유럽의 외자회사로부터 수입하기 위해 법을 바꿔야했다.

그 기사를 보고 나는 간담이 서늘했다. 이건 현실이었다.

나는 한국정부와 일본정부 어느 편이 더 현명한가에 대해 혼란스러웠고 지금도 판단을 내리기 힘들다.

일본처럼 고개를 숙일거라 예상하던 외자사의 예측과는 달리 우리나라 정부는 국내생산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국내에 필요한 백신의 전체물량이 모두 국내생산으로 공급이 가능했던 것이다.

당시 외자회사에 다니던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우리나라 정부에 대해 자부심을 느꼈다.

그리고 이 건에 대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던, 어찌 보면 라이벌 상황에 있었던 국내사에 고마움을 느꼈다.

 

백신은 식량이다. 백신은 무기다. 경제논리로 설명해서는 안 된다는 점에서다.

심지어 신종인플루엔자 때 WHO가 지역별로 백신보관할 장소를 물색할 때조차 어마어마한 유치전쟁이 벌어졌다. 일단 유사시에는 자기 국경내에 백신을 비축해 놓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에서이다.

 

지금은 과잉이라는 우려도 나오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이런 추세로 여러 회사가 백신에 대한 투자가 생산기지가 구축된다면 수출을 하면 된다.

욕심 같아서는 개발하는 백신이 좀 더 다양하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지만.

한동안 거들떠보지도 않던 회사들도 이제 돈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약가폭탄의 무풍지대이기 때문에 무분별하게 투자가 몰린다는 비판이 일부에서 있지만 아예 없는 것보다는 중복투자가 나은 게 백신생산시설에 대한 투자다.


분노도 증오도 힘이 있을 때 하는 것이다.

2010년 글로벌백신시장은 280억불규모였는데 2017년 567억불 정도로 증가할 것이 예상된다는 GAVI보고서가 있었다.

제약분야에서 large molecule인 바이오의약품의 성장이 기존  케미칼, small molecule의 성장률을 훨씬 앞지른다는 보고서는 이제 넘쳐흐르는 시대가 되었다.

백신은 바이오중에서도 가장 성장률이 높은 분야에 속한다.

게다가 세월이 십 수 년 흐르면서 백신도 돈이 되는 세상이 되었다.

이 분위기가 오래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데 자꾸 불길한 생각이 드는 것은 기우에 불과한 것일까?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