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병철(고려의대 예방의학)
메르스(MERS) 혹은 중동호흡기증후군은 2012년 처음 알려진 후 주로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지역 국가를 중심으로 유행하던 감염병이다. 2015년 우리나라 유행 전까지 영국, 독일을 포함한 유럽국가와 미국,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도 중동에서 유입된 사례들이 있었지만 모두 산발적인 발생으로 그쳤다.
그러나 2015년 우리나라 메르스의 유행은 병원을 중심으로 연쇄적으로 집락적 발생을 하면서 유행 규모면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2위에 오를 정도로 전격적인 맹위를 떨쳤다. 이 메르스 유행은 그동안 우리나라에 산적해 있던 방역과 보건의료체계의 여러 맹점을 드러냈고, 신종감염병으로 인한 공중보건위기 대비 및 대응체계의 부끄러운 민낯을 고스란히 노출시켰다. 노출자 및 접촉자관리 부분도 예외는 아니며, 이글에서는 간단히 접촉자관리와 관련된 논의사항을 요약하였다.
메르스 접촉자의 관리는 자가격리, 시설격리, 능동모니터링으로 이루어진다. 밀접접촉자(close contact)인 경우 14일간 자택에서 격리 및 증상발생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자가격리이며, 환자가 발생한 병원 입원자들을 병원이나 시설에 코호트 격리하는 것이 시설격리, 그리고 기타 접촉자들은 활동에 제한을 두지 않고 전화로 14일간 증상발현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능동모니터링이다. 격리(isolation)와 검역(quarantine)의 정의에 대한 오해는 차치하더라도 접촉자를 밀접접촉자와 그 외 접촉자로 나누는 것은 자가격리대상자를 나누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된다. 질병관리본부의 메르스 대응지침(개정3-3판)은 이전 판의 ‘2m이내 1시간이상’보다는 훨씬 사실에 가까운 ‘동일공간에 생활하거나 머문 경우’ 등을 포함하고 있으나, 여전히 ‘같은 병실에 있던 환자’ 등으로 근거 없는 정의를 가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의 2012년 환례정의나 2014년 개정된 환례정의 내용(밀접접촉을 직접적 역학적 연관성으로 바꿈)은 병실 방문객을 포함하는 것은 물론, 같은 공간에 머무르거나 같이 일하거나 교실 공간에 있었던 경우, 같이 생활하거나 여행하는 경우 등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그런데 이보다 늦게 나온 우리나라의 메르스 대응지침의 밀접접촉자 정의는 세계보건기구의 환례정의와 확연히 달랐다. 우리나라 지침의 밀접접촉자 정의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판단되고, 유행 이후 급하게 미국 CDC의 것을 번역하였으나 세부적인 면에서 의미가 다르게 되어 있다.
두 번째는 환례정의에서 발열과 호흡기증상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초창기 근육통이나 소화기질환자들에 대해서는 검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자가격리나 능동모니터링에서도 발열과 기침만 주로 모니터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후에 개선되었으나 여전히 발병의 기준이 되는 증상은 명확하지 않다.
세 번째는 자가격리의 근거나 이에 대한 합리적 설명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부의 메르스 포탈에 있는 설명은 ‘발병자가 감염시키는 시점을 알 수 없어서’ 자가격리를 해야한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는 ‘잠복기간 감염은 없고, 증상이 발생해야 감염시킨다’는 또 다른 정부의 설명과 배치되는 것이다. 또 증상시작 시점은 능동모니터링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지 자가격리의 기능은 아니다. 메르스의 밀접접촉자에 대한 조치에서 세계보건기구, 미국 CDC, 캐나다의 권고조치는 증상발생여부의 모니터링을 중심으로 되어 있고, 우리 정부지침에서 말하는 자가격리(사실은 자가검역)는 배제되어 있다. 우리 정부지침에 해당하는 자가격리는 외국은 증상이 나타난 사람에 대해서 적용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정부가 증상이 없는 접촉자의 자가격리가 유행관리상 필요하다면 시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에 합당한 근거와 필요성을 국민들에게 제대로 설명해 주는 것이 옳다.
네 번째, 자가격리의 내용으로 정부가 내린 자가격리인 준수사항이나 지침은 ‘독립된 공간에서 혼자 생활하기’, ‘가족 등과 접촉하지 않기’, ‘기침시 입과 코를 막기’ 등등인데, 이들 지침은 증상이 있는 환자들을 자택에 격리시킬 때 준수하는 사항들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증상이 없이 단순히 밀접접촉한 이유로 자가격리(엄밀하게는 자가검역)를 시키는 경우는 증상 발생여부를 모니터링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우선 교육되어야 한다. 그런데 자가격리의 목적이 불분명하다 보니 자가격리인 준수지침도 우선순위가 명료하지 않았다.
다섯 번째는 자가격리 수행과정의 문제로 다양한 혼란이 야기되었다. 대상자 선정 후 통보와 대상자 교육이 같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점, 자가격리시 준수사항에 대한 효과적인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점, 가택에 2주간 갇힐 때 발생하는 생필품 보급, 사회적 경제적 손해에 대한 보상, 격리자가 사용했던 휴지와 각종 개달물 처리에 대한 것들이 자가격리가 한창 수행되면서 나중에야 이루어졌다. 이런 사회적 지지프로그램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자가격리가 이루어 진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섯 번째는 자가격리자에 대한 정신적 지지프로그램이 없었다는 것이다. 격리자 본인이나 가족이 느끼는 불안과 사회적 낙인 등 다양한 정신적 문제에 대해서 지원하는 체계가 없었다.
2015년 메르스 유행시 보여준 접촉자관리는 자가격리, 시설격리를 막론하고 그 기준이나 수행과정, 내용과 지침, 수행과정 중 발생할 수 있는 예상가능한 문제점들에 대한 대비나 준비 없이 이루어져서 부실상황을 연출하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유행자료를 근거로 분석을 하여 접촉자관리에 대한 기준과 지침을 제대로 만들어내고 이를 근거로 대비한다면 좋은 교훈을 얻는 경험이었다고 평가될 것이다.
출처 ; 대한의학회 e-뉴스레터 No.63 (2015년 7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