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협, 현 의료계 문제 꿰뚫는 법의 판단 환영
지난 11월 26일 대전고등법원 제3민사부는 K대학병원 전공의(인턴)가 병원을 상대로 제기했던 초과근로수당 소송에 대하여 병원의 항소심을 기각하고 전공의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는 법이 상식에 맞게 약자를 보호한 지극히 당연한 판결의 예로, 대한전공의협의회(회장 송명제, 이하 대전협)는 해당 판결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다.
대전협은 “이번 판결은 그 동안 수련병원들이 전공의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여 이윤을 보전하던 기존 관행에 경종을 울릴 것으로 예상된다”며 “지금까지 전공의들은 수련병원으로부터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저임금을 받아왔고 수련병원들은 이렇게 싼 노동력의 최대 활용을 목적으로 전공의 근무 시간을 주 100시간 이상까지 연장시켰다. 이는 전공의들의 인권 유린은 물론 진료 환경을 왜곡시켜 환자 안전을 위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판결은 수련병원이 전공의의 근로에 대해 근로기준법을 준수한 임금을 제공해야 한다는 상식적 판단을 함에 따라 수련병원들이 전공의 근무 시간을 단축하고 전공의 노동력 대신 호스피탈리스트(입원환자전담전문의)의 고용을 늘리게 하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전공의들의 근무수련환경을 개선하고 수련병원 진료 정상화를 촉진할 획기적인 법적 토대인 셈이다”고 전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수련병원과 전공의 간의 포괄임금계약이 법이 예정하는 원칙적인 임금 지급계약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하면 원고가 포괄임금계약에 대하여 묵시적으로 합의하였다고 보기는 어렵고, 전공의는 피교육자적인 지위를 겸할 뿐만 아니라 전문의가 되기 위해서는 수련병원에 선발되어 반드시 정해진 수련기간 동안 수련하여야 하는 입장이므로 피고의 급여 지급 기준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을 것으로 보이는바, 따라서 그 동안 전공의들이 아무런 이의 없이 수련병원이 정한 급여를 수령하여 온 사실만으로 전공의들이 포괄임금제를 수용 또는 합의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명시했다.
또한 “그 동안 인턴의 야간 및 휴일 근무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것은 사실이나, 병원의 야간 및 휴일 운영에 있어 인턴의 인력 사용은 병원의 인력 운용의 편의와 재정 부담 경감 등의 차원에서 실시된 관행일 뿐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서는 유럽 국가의 전공의 주당 근무 시간을 48시간 내지 52시간으로 제한한다는 점, 그리고 우리나라도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대책을 마련하여 주당 평균 80시간 근무 제한, 최대 연속 수련시간 36시간 제한 등의 대전협과 정부 간의 합의가 있었으며 당직 수당은 관련 법령(근로기준법)에 따라 당직 일수를 고려하여 지급하기로 되어 있음을 들었다(전공의수련규칙표준안(개정안)).
재판부는 또 “전공의들이 피교육자적인 지위를 갖고 있고, 전공의에 대한 교육 및 수련으로 인해 수련병원들이 상당한 액수의 비용을 부담하고 있음은 인정되나 그러한 사정은 의료 분야의 전문성과 공익성 등 그 특수성에 따른 것으로서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전공의들의 근로 제공 및 과소한 급여의 지급으로 보전할 문제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선언했다.
대전협은 이에 대해 “현 의료계 문제의 핵심을 정확히 꿰뚫는 매우 탁월한 법적 판단”이라며 환영했다.
그 동안 수련병원들은 전공의는 근로자라기보다는 피교육자에 가까우므로 근로자의 권리를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단언해왔다. 그러나 대전협은 전공의의 근로 제공자로서의 권리와 인권에는 사각지대가 없어야 함을 지속적으로 주장했다.
대전협은 “전공의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이며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대법원 판례들이 이미 존재하며(1998.4.24.선고 97다57672판결, 2001.3.23.손고 2000다39513판결) 이번 판례도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은 법 역시 대전협과 같은 입장을 갖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번 판례에 대해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시간에 관한 규정을 적용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기준법상에 따른 임금지급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하며, 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운 경우에도 포괄임금제 방식의 임금 지급이 근로기준법이 정한 근로시간에 관한 규제(주 40시간 초과 금지 등)를 위반하면 허용될 수 없고, 그 임금 지급 계약 부분은 무효”라고 발표했다. 또 “설사 수련병원과 전공의 사이에 포괄임금계약이 성립되었다 하더라도, 전공의 근로는 성질상 근로시간을 예측하거나 측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아니고, 달리 전공의에게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시간에 관한 규정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인정되지도 아니하므로, 포괄임금에 포함된 법정수당이 근로기준법이 정한 기준에 따라 산정한 법정수당에 미달하는 때에는 포괄임금제에 의한 임금 지급계약 부분은 원고에게 불이익하여 무효”라고 명확히 밝혔다.
대전협은 “이번 판례는 그 동안 수련병원들이 내세웠던 전공의의 포괄임금계약제 관행이 위법함을 명시한 역사적 판례이며, 이로써 전공의 수당에 있어서 근로기준법 적용에 관한 오랜 반론도 잠재울 수 있게 되었다”면서 “이번 판결 이후 문제의식을 가진 전공의들의 움직임은 지극히 당연한 것으로 특별한 개입 없이도 일어날 것으로 생각된다. 이미 도처에서 열악한 수련 환경 시정을 요구하며 각 수련병원의 전공의 파업이 자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추가근로수당 소송도 각 지역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예측했다.
그리고 “대전협은 만약 전공의들의 요청이 있다면 전공의를 대표하는 단체로서 전공의 초과근로수당에 대한 집단 소송을 돕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면서 “이는 왜곡된 한국 의료 문제를 근본부터 해결하려 하지 않고 전공의 노동력 착취라는 미봉책으로 수십 년 간 일관해 온 수련병원들의 자승자박이다. 이제부터라도 수련병원들은 의료 경영 전문가 집단으로서 주인 의식을 가지고 병원 진료 환경 정상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수련병원의 전공의 근로에 대한 근로기준법 준수는 고(故) 김일호 전 대전협 회장이 암으로 사투하는 동안에도 마지막까지 투신했던 전공의 문제의 핵심이다. 특히 근로기준법에 따른 표준근로계약서 작성은 18기 집행부도 반드시 이루고자 총력을 다하고 있는 부분이다.
대전협은 이에 대해 “표준근로계약서는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에서부터 외국인노동자도 쓰게 되어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전공의들은 이 표준근로계약서를 쓰지 않는다. 대전협이 전국 수련병원들의 수련계약서를 검토한 결과 고의적으로 표준근로계약서 양식을 어기거나 아예 계약서 자체를 작성하지 않고 있었다. 또한 수련계약서가 일정 양식을 따르는 경우에도 이번 판례에서 위법한 것으로 명시한 포괄임금계약제를 따르고 있으므로 무효이다”면서 “수련병원들이 자체적으로 제정한 전공의 수련규정들 역시 전공의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내용만을 적시하거나 임금 조항에 대한 항목을 고의로 누락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판결에서 보았듯이 수련병원들은 전공의 근로에 대해 대한민국 근로기준법을 준수해야 하며 여기에는 어떠한 편법적 예외도 인정될 수 없음이 자명해졌다. 대전협은 앞으로도 전공의들의 근무수련환경 개선과 수련병원 진료 정상화를 통하여 대한민국 의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고 약속했다.
또한 “고(故) 김일호 전 대전협 회장의 영전에 이 판결문을 바친다”며 전공의들을 위해 희생과 헌신을 이어온 선배 및 동료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