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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전공의 단체행동의 서막을 알리는 대회원 서신


안녕하세요.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박지현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며 일상이 되어버리고 우리 전공의는 점차 지치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정부는 ‘의료진 덕분에’라는 문구가 악랄한 기만처럼 느껴질 정도로 의료계와 대화를 단절한 채 온갖 정책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지난 5월, 보도자료와 성명서를 통해 현안에 대한 분명히 의견을 전달했고
지난 6월, 공식적인 입장문과 대회원 서신을 통해 이 문제에 대해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심각하게 인지하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또 여야 및 국회 상임위원회를 가리지 않고 의원실을 방문해 현안에 대한 전공의와 의대생의 입장을 전달했습니다. 노무사와 변호사 자문회의를 통해 전공의 회원을 보호하며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법률적 장치를 마련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지난 7월 20일 보건복지부 국장 간담회에서는 의료자원정책과에서 관할하는 의대 정원 확대에 관해 강력한 반대 의견을 전달했습니다. 연이어 단체행동의 기틀을 마련하고자 온라인 노조 총회를 개최해 7월 24일 제가 노조위원장으로 나서는 등 노조 임원 교체도 완료했습니다.
 
재난 상황에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반대편으로 몸을 피하는 사람이 있고 그 재난의 현장으로 달려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전공의는 언제나 그 위험을 무릅쓰고 환자를 위해, 국민을 위해 현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그 위험의 대가는, 실망스러운 정책으로 우리 앞에 다가왔습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의사 수가 부족해 당장 급하게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그 수는 어디서 나온 것이며, 그 방법은 과연 타당한 것입니까? 그리고 과연 그 정책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입니까?
 
우린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일련의 잘못된 정책이 우리의 의료 현장을 위태롭게 만들었고 지속적으로 우리의 삶과 환자의 건강을 저울질하게 했습니다. 기피과라는 창피한 이름표가 붙여진 채로 전공의들은 최소한의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병원에서 외면당했습니다. 공공병원은 전공의를 방치하고 수련의 질을 관리하지 않으며 결과의 공공성만 강조할 뿐 이에 이르기 위한 과정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병원에서 매일 마주치는 우리의 처참한 현실은 대한민국 의료 현실이 되었습니다.

대한병원협회는 기형적인 의료계를 만들어내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책임을 방관했습니다. 의대 정원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정부의 정책에 환영하는 입장을 밝히고 앞장서서 무한한 인력 착취를 부르짖으며 의료 현장을 파멸의 길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병원협회에 다음과 같이 요구합니다.
 
하나, 병원협회는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 앞에서 의료인의 양심을 버리고 후배를 착취하려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찬성 입장을 철회하라.
 
병원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의사 수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병원에서 부려먹을 값싼 노동력인 전공의가 부족하다는 것을. 필요한 곳에 적정한 의사들이 분배될 수 있도록 병원은 경영자의 논리에서 벗어나 의료인의 양심에 따라 환자 안전을 위해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지역에 제대로 된 의사가 없다는 것은 공공병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현장에 수술할 의사가 없다는 것은 병원과 보건당국이 수술할 환경을 만들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턱이 높아서, 갈 사람이 없어서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둘, 의사가 부족하다는 잘못된 논리로 일반 국민을 혹세무민하지 말고, 전문가의 양심을 걸고 의료 현실에 대한 제대로 된 분석을 시행하고 정책 제안에 목소리를 내라.
 
응급 상황에는 우선순위에 따라 가장 중요한 조치부터 순서대로 취하는 것이 의료의 기본 원칙입니다. 이를 무시하고 응급 상황에서 불필요한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 지금 정부와 병원협회의 상황입니다. 응급 상황에서 응급조치를 하지 않아서, 또 다른 합병증과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이 책임은 그들이 물어야 할 것입니다. 전공의는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이들에게 분명히 경고하겠습니다.
 
셋, 안전한 진료 환경과 수련환경을 만들어달라는 전공의의 외침을 외면하지 말라.
 
피교육자라는 구실로 전공의를 착취해왔으나 전공의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는 수십 년 동안 오리무중이었습니다. 으리으리한 병원 건물을 짓고, 번지르르한 장례식장과 식당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적절한 교육 시스템, 전문가의 고용, 안전시설 구비 등 환자를 안전하게 진료할 수 있도록 의료의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곳에 제대로 된 환경을 마련해주십시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병원이 경영자의 마음에서 벗어나 의료인의 양심을 걸고 미래를 고민할 때 의료계가 하나가 된 마음으로, 대화할 수 있을 것이고 정책 결정자에게 국민을 위한 제대로 된 정책안을 제시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의료의 공공성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전공의는 안전한 환경에서, 의료의 원칙을 지키며 환자를 위해 진료하고 싶습니다.
의료에 무지한 자들이 그 공공성을 정치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고자 합니다. 정말 의사가 부족하다면 어디에 부족하고, 왜 기피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암이 발생했을 때, 조직검사도 없이 항암제를 투약하진 않습니다. 암의 조직학적 진단도 모른 채 절제를 하지 않습니다. 모든 치료에는 순서가 있고 치료를 위한 준비를 하고 위험성을 평가하며 동료와 의견을 나누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우린 이를 잘 알고 있고, 전문가입니다.
 
만약 병원협회가 지금의 입장에서 변함없이 의료인의 양심보다 이익 추구가 우선시된다면 전공의의 공식 대표단체인 대한전공의협의회의 대표이자 전공의 노조의 위원장으로 근로자에 맞는 준법 투쟁을 시작할 것을 다짐합니다.
 
1만 6천 전공의가 동참해 젊은 의사의 목소리로 우리가 지금까지 어떤 희생으로 의료계를 지켜왔는지 보여줄 차례입니다.
 
여러분의 곁에서 대한전공의협의회가, 대한전공의노동조합이 함께 하겠습니다.
언제나처럼 위험을 무릅쓰고 재난의 현장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전공의의 대표로, 전공의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0년 7월 27일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 박지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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