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인문학
정지태 [대한의학회 부회장/고려의대 의인문학]
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이다. 어렸을 적에는 일 년 내내 기침을 해서 뻔질나게 동네의원을 드나들던 약골이었다. 건축가가 되고 싶었던 적이 있고, 시인이 되어 보고 싶기도 했다. 한때는 화가가 꿈이었던 적도 있었는데 고등학교 시절 부모님의 뜻도 있고,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갈등 없이 의과대학에 진학했다. 예과 때는 술 마시고 노느라 세상모르고 살았는데, 학부에 올라와 보니 상황이 크게 달랐다. 나와는 맞지 않는 길을 가겠다고 나선 느낌이랄까? 그러나 용기도 없어서 과감히 새로운 길을 택하지 못하고, 저공비행으로 가장 빠르게 지옥 같은 과정을 벗어나자고 생각했고, 운이 좋아 낙제 없이 졸업했다. 전공의 과정을 밟으면서부터는 그런 사치스런 갈등을 할 틈도 없이 그저 매일 매일 숙제하듯 밀려드는 환자와 씨름하며 살았다. 나의 의사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20년도 넘은 이야기지만, 잊히지 않는 환자 보호자가 있다. 알레르기클리닉을 열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인데, 심한 아토피피부염 환자가 엄마의 손을 잡고 진료실에 들어왔다. 그런데 진료도하기 전 그 엄마의 얼굴에서 너무나 불행한 삶에 지친 여자의 그림자가 느껴졌다. 절망 상태라고나 할까? ‘남편이 인터넷 보고 여기 아토피 치료 잘한다고 해서 왔어요.’라고 하고는 너 하고픈 대로 해보라는 표정으로 아무런 말도 안했다. “뭐 이런?” 열이 확 났지만 “이 사람 뭔가 심상치 않구나..”하는 느낌이 들어서 아무런 말없이 한참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토피 때문에 안 가본 병원이 없고, 안 해본 치료가 없는데, 다 소용이 없다. 학교 선생을 했는데 시집에서 애가 저런데 무슨 선생질이냐? 그만두고 애나 키우라! 해서 그만두고 애만 키우는데도 증상은 하나도 좋아지지 않고, 남편은 남편대로 학교 그만두고 돈만 쓰면서 집에 있는데 애를 어떻게 키우기에 저렇게 애가 항상 지저분하고 진물이 나느냐고 화를 낸단다. 날이 갈수록 아이에게 적대감이 생기고, 아이가 미워지는 자기가 너무 싫고, 자기가 어떻게 해야 아토피피부염이 좋아지겠냐는 것이 chief complaint였다.
처음에 밝혔듯이 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다. 나더러 어쩌란 말이냐? 그동안 환자의 질병만 고치고 살았다. 환자의 배경은 치료 시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빠른 시간에 많은 환자를 보면서, 적절한 처방과 욕먹지 않을 정도로 친절한 척 설명을 하면서 지내다가 이건 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상대를 만나, 누구에게 컨설트 구하기도 힘든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아토피피부염 가이드라인에는 가족 간의 갈등, 긴장 관계를 고려해서 치료하라고는 되어있지만, 뭘 어떻게 하라고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는 의학서적은 없다. 엄마더러 정신과 상담이나 받으라고 하는 것도 그렇고, 내가 당장 대처하기에는 아는 것이 너무 없고 해서, 그냥 오랫동안 아주 상세히 미주알고주알 과거력을 캐묻고 있는 중에, 너무나 당황스럽게도 엄마가 운다. 갑자기 펑펑 운다. 직장 그만두고 애한테만 매달려 병원을 다닌 지 2년이 다되어 가는데, 오늘 처음으로 자기이야기를 들어주는 선생을 만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울고 나더니 밝은 얼굴로 시키는 대로 열심히 따라 할 터이니 꼭 자기 아이를 고쳐달란다. ‘이건 뭐지? 소설이야? 영화야?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자기 혼자 다해놓고, 난 듣기만 했지 한말도 없는데... 병을 다 고친 듯한 저 표정은 뭐지?’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나가는 보호자를 불러 다음번 방문에는 남편과 시어머니가 다 함께 와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예약을 했다.
몇 차례 가족 상담을 하고, 질병교육을 마친 후, 그 보호자가 나에게 이야기했다. 그날 아무 말도 없이 자기를 바라보는 표정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좋은 것 같은 따뜻한 의사로 보였다는 것이다. 지금도 별로지만, 그때의 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소아청소년과 의사가 전혀 아니었다. 소아과 전문의 따고, 알레르기 호흡기 세부전문의를 따고, 머릿속 가득히 냉정한 의학지식을 채워 넣고, 미국 연수에서 논문 몇 편 쓰고 막 돌아와 자신감을 넘어 자만심으로 가득하던 시절이었다. 그간의 나의 진료 행태를 반성했다. 많이 반성하고 내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보고 싶었지만, 방법을 몰랐다. 인정이 넘치고, 따뜻한 말로 저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의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몰랐다. 배운 적도 없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의과대학 교수들은 “가르칠 것은 많고, 수업시간은 적어서 아무리 빨리 강의를 진행해도 다 설명해 줄 수 없는데, 이렇게 힘든 대학 생활을 하는 학생들에게 뭔 쓸데없는 인문학을 강의하느냐?”고 욕한다. 그래서 인문학 강의를 정규과정에 넣는 것도 주장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특강을 한다. 물론 학생들은 들어오지 않는다. 학교 곳곳에 눈에 확 띄는 안내 포스터를 게시한다. 나는 그것으로도 교육의 효과는 충분하다고 믿는다. 언젠가 그들도 알게 될 것이다. 인문학은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이해하는 학문이고, 학창시절 복도를 지나다니며 보았던 포스터 속의 선정적 제목들이 인문학의 이야기였고, 인문학은 의사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히는 모닥불이라는 사실을 그들이 깨닫기를 기대할 뿐이다. 언제가 마음을 따뜻하게 덥히고 싶으면 그런 기억들을 더듬어 인문학으로 눈길을 돌려 보고, 그것이 나처럼 너무 낯선 경험만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교과서를 다시 집필하는 과정에서 원고를 검토하다가 1970년대 내가 배웠던 교과서의 같은 부분을 펼쳐 놓은 적이 있었다. 질병의 제목은 같은데 내용이 너무나 달랐다. 40년 전에 배우고 외우고 시험을 치렀던 그 지식이 어떤 것은 지금은 치료금기라고까지 되어 있었다. 이처럼 의학은 새로운 지식이 빠르게 생성되고 변하는 학문인데, 그것을 다 가르칠 수도 가르칠 필요도 없다고 믿는다. 환자를 보면서 생긴 의문을 스스로 풀어가는 방식을 가르치는 것이 의학교육의 정도라고 생각한다. 의학교육은 어떻게 새로운 지식에 접근할 것인가를 가르치고, 스스로 길을 잡아 나가는 방식을 가르치는 방식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학문을 대하는 기본적 자세를 가지고 있는 학생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인간이 살아왔고, 살아가고, 살아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인문학적 소양을 심어주는 노력이 필요한 사회가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다. 30년 후의 세상은 지금 보다 인공지능이 훨씬 발달하여 인간의 지능을 능가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설사 그렇게까지 되지 않더라도 현재의 의과대학생들은 그와 비슷한 시대에 활동적으로 의사 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의사 활동의 많은 부분이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 되어 있을 그 시대를 살아가야 할 현재의 의과대학생들에게 애써 강조해야 할 것은, 인공지능이 가질 수 없는 기능인 인문학적 소양에 기반을 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사로 성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학 그것이 바로 인문학인 것이다.
출처 ; 대한의학회 e-뉴스레터 No.64 (2015년 8월호)